잘난 사람들

겨울 산허리 중턱에 이름모를 풀들이 시들어간 자리에서 질긴 생명력으로 버티어온 노란들국화 한송이가 얇은 바람결에 흔들리고 있었다. 양지바른 계곡 마지막 자락에서 날벌레 움직일 만한 공기이동으로 아름다운 꽃이 그렇게 피었나보다. 이름없는 미물들이 찾아와 한나절 지나도록 햇빛을 받으며 꽃잎위에서 놀다가 날이 저물면 잔디에 묻혀 지온으로 밤을 새워간다.

일기 고르고 천지가 보일 때면 어김없이 찾아와 서로 딩굴며 속삭이고 사랑을 나눈다. 그래서 익은 사랑으로 알이 생성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설한풍에 매서웁게도 온세상이 백의 동장군으로 변할 때쯤이면 태동으로 봄을 기다려가고 아름다운 추억을 담은 미물들은 대지위에서 씨알을 남기고 죽어간다.

분명 봄이면 태어날 그 모습들을 묻어 보면서 한해가 저물어 반추에 역사로 어둠을 만든다.

인고의 삶속에서도 이따금 잘난 사람들을 보게 된다. 그들은 목과 어깨가 각기 다르다.

시대의 흐름에 신언과 운으로 줄이 맞아 주위 언덕을 딛고 자세를 일으킨다. 목청을 다듬고 거드름으로 일관한 곧은 자세가 더욱 우리를 슬프게 한다. 그들은 또 시대의 변화와 환경, 정치를 탓하며 경제가 어떠하고 OECD와 WTO발음으로 역설하지만 원어 뜻도 모르면서 목에 힘을 가하는 모습을 보여 주기가 일쑤다.

그러나 신세대들은 논리에 맞지 않는 고성을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배신감으로 오욕을 씻지 못할것이 뻔한 사실이다. 엽관은 자기의 기술이며 행하는 자세가 그것에 그치고 직업으로서의 사명감과 충실한 직무수행이 전부일뿐, 타인에 대한 설교는 어불성실이며 어떤 이유로든 부합될 수 없는 이치인 것을 알아 주었으면 한다.

지가가 상승하여 유산으로 넉넉해진 사람들, 자제할 부분을 망각하고 나만의 세상으로 더불어 산다는 전체의 이웃을 잊은지 오래 되었나보다. 삶의 진실을 모르고 그렇게 세월은 가고있다. 잉태에서 무덤으로 마지막 주머니 없는 수의 한벌을 가지고 갈 뿐. 그도 다행이라 살아온 댓가의 얻음을 알아야 한다.

잘난사람 못난사람 모두 같은 이치로 받아들이는 우주의 세계를 왜 모르는가. 산이 좋아 꽃과 더불어 살다간 이름없는 작은 생명체를 보면서, 자연의 이치에 순응하고 탓하지 않고 조용히 대지위에 몸을 놓고 사라진 아름다운 모습에서 미물같은 우리의 모습을 발견했으면 바랄게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