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완수
▷석문중학교 교사
▷한국문인협회 당진지부 사무국장
눈물은 감정의 결정체다. 슬퍼도, 기뻐도, 고통스러워도, 즐거워도 흘리는 것이 눈물이고 보면 분명 눈물은 몇 퍼센트의 염분과 수분으로만 이루어진 게 아니다. 그 속에는 당사자의 감정이라는 어마어마한 무게가 들어 있다.
눈물하면 좀처럼 지워지지 않는 기억이 하나 있다. 아마 중학교에 다닐 때였을 거라고 기억된다.
내가 나고 자란 곳은 누우면 파도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리는 작은 어촌이었다. 면소재지까지는 무려 시오리가 넘게 떨어진 오지였다. 나는 그곳에서 면소재지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 다녔다. 그런데 내가 국민학교(현재 초등학교) 5학년이 되자 우리는 면소재지로 이사를 했다. 말은 자식의 교육 때문이라고 했지만 실상은 일하기 싫어했던 아버지가 일에서 벗어날 요량으로 내린 결정이었다. 아버지는 농사를 무척 싫어해서 결혼 후 농사는 주로 어머니의 몫이었다고 한 것을 보면.
이렇게 해서 우리는 좀 편하게 학교를 다니게 되었지만 문제는 우리 세 자녀의 학비와 먹고 사는 것이었다. 농사가 싫어서 이주한 것이니 아버지에게는 뚜렷한 직업이 있을 리 만무했다. 술로써 그 긴긴 해를 죽이는 것 말고는. 결국 어머니가 아버지 대신 생활 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
어머니는 하루하루 남의 집일을 거들어 주고 일당을 받아 생활비를 충당했다. 어머니는 아침 일찍부터 몇번 집(지금은 ○○수산이란 간판을 달았지만 그때는 ○번 집으로 불렸다.) 창고에 가서 홍합을 까거나 생선을 다듬는 일로 밤을 맞기가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갑자기 일하던 모습으로 들어온 어머니가 우리를 방으로 불렀다. 조금 전까지도 홍합을 깠는지 어머니의 몸에서는 조개 특유의 비릿한 냄새가 배어 나왔다. 우리는 영문도 모르고 어머니 앞에 앉았다. 그러자 어머니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야들아, 니들 내말 잘 들어라. 내가 지금 넘의 일을 해서 먹구 사는 처지라서 넘헌티 손꾸락질 당하지만 그건 이 에미로서 족허다. 나는 배우고 싶어도 학교 근처도 못 갔는디 너희만은 꼭 가르치고 싶었다. 그래서 허구헌 날 넘의 일을 허는디 넘들이 나보구 천한 년이라구 손꾸락질 허는구나. 그래도 나는 참을 수 있다. 너희가 번뜻하게 되기만 헌다면. 그러니께 너희들이 열씨미 공부해야 헌다. 너희들은 커서 넘헌티 절대로 손꾸락질 받으며 살아서는 안된다. 꼭 그래야 헌다.”
왜 그렇게까지 눈물을 흘렸는지는 지금도 그 자세한 내막을 알 길이 없다. 다만 울음 반 눈물 반으로 절규하던 어머니의 음성이 지금도 환청처럼 들린다. 그때의 눈물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는지도 모른다. 만약 그때 어머니의 눈물을 보지 못했더라면 아마 내 인생은 또 다른 방향으로 흘렀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오늘 또 하나의 눈물을 보았다. 사람이 우는 모습을 자주 보았지만 오늘 본 눈물은 질이 달랐다. 아슴하던 나의 추억에 돌을 던져 온통 파문을 일으키게 했던 눈물이었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담임을 하다보니 연말이 되면 고교 진학 상담을 하게 된다. 특별히 올해처럼 입시제도가 내신제로 달라지면 더욱 분주하다. 그런데 우리 반아이 중 몇 녀석이 원하는 고등학교의 내신이 미덥지 못했다. 여기저기에서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그 학교의 합격선이 상당히 상향될 것이라는 풍문이었다. 나는 할 수 없이 합격선 근처에서 달랑대고 있는 학생의 부모를 불러 상담을 하게 되었다. 녀석의 어머니도 그렇게 해서 오셨다.
그런데 그중 한 분이 상담도중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그것도 반짝 보였다가 사라졌다면 눈치를 채지 못했을텐데 아예 눈물이 볼을 타고 흘렀다. 정말 난감한 순간이었다. 상담을 하면서 자식들에 대한 걱정의 소리는 자주 들었어도 오늘처럼 눈물까지 흘리는 경우는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얼른 돌려서 말했다.
“그렇게까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현재의 상황이 그렇다는 얘깁니다. 다만 부모님께 먼저 알려드리는 게 옳을 것 같아 오시라고 한 겁니다.”
“........”
위로의 말을 했지만 모든 것이 허사였다. 자식으로 인해 무너지기 시작한 녀석 어머니의 감정은 주체할 수 없는 물결과 같았다. 애써 눈물을 보이지 않으려 눈물을 훔치던 녀석 어머니는 더이상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게 되자 자리에서 일어나 내게 ’죄송하다, 미안하다’는 말만 남겨 놓고 자리를 떠났다.
나는 순간 볼을 타고 흐르는 녀석 어머니의 뜨거운 눈물을 보았다. 오직 자식 잘 되기만을 간절히 바라는 어머니의 정성을. 옛날 내 어머니에게서 보았던 그 아린 눈물이었다. 비록 당신 자신의 체면은 당장 어찌 되더라도 자식을 걱정하고 염려하던 어머니의 쓰라린 감정이 내 가슴을 온통 흔들어 놓았다.
그렇다. 눈물은 분명 소금 몇 퍼센트와 수분만으로 이루어진 것만은 아니다. 특히 어머니가 자식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단순한 분비물이 아니다. 그 눈물 속에는 어머니의 모든 기대와 소망이 들어있다. 때로는 걱정의 한숨까지도. 그래서 어머니의 눈물은 사랑이다.
나는 교무실 문을 열고 나가던 그 어머니 위에 겹쳐지는 또 다른 내 어머니의 모습을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