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한자를 배우기 시작하는 어느 초등학교 2학년 교실에서 한자시험을 봤다. 열심히 공부한 A는 100점이고 짝꿍인 B는 70점이었다. A는 선생님과 부모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았고 기분이 최고였다. B는 그런 A가 부러웠지만 나름대로 새로이 한자를 배우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다음날, 선생님은 아이들 일기장 검사를 하다가 B의 일기장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B는 아라비아 숫자대신 비뚤비뚤 한자로 날짜를 쓰고 배운 한자가 나오는 문장을 일부러 만들어가며 서툴지만 나름대로 한자를 섞어가며 일기를 써냈던 것이었다.

100점 받은 A를 포함한 그 누구도 한자를 사용하거나 한자에 대한 내용은 전혀 없었다. A는 열심히 공부하여 100점을 받았고 그것으로 끝났지만 B는 배운 것을 다른 곳에 적용하고 응용하는 능력이 있었다.

주목할 점은 B가 미국에서 자라다 1학년 때 전학 온 아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B의 극히 개인적인 영역으로만 돌리기에는 웬지 우리나라 교육풍토가 맘에 걸린다. 시험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현실임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구 선진사회의 교육여건을 동경하고 본받으려는 것이 바로 이런 응용력과 창의력을 길러주기 때문이 아닌가? 창의력 중심의 교육은 학교에서 배운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이를 응용하고 창조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을 의미한다.

과연 학교에서 배우고 알고 있는 것의 어느 정도만큼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활에서 응용하고 적용하고 있는지 새삼스레 생각하게 된다.

글을 읽고 쓰는 일, 기본적인 숫자 계산, 건전지를 끼울 때 양극 음극을 맞추는 것,

그밖의 극히 기본적인 정도만 알면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다고 여기고 우리가 배운 대부분의 학교 지식은 시험이 끝남과 동시에 사장되고 잊혀진다. 실험을 통해 직접 느끼고 아는 대신에 책을 통한 단순한 설명으로 암기하여 습득한 지식을 어떻게 기억하고 응용할 수 있단 말인가?

수학성적이 아주 좋은 학생에게 어려운 수학문제를 냈다. 그 학생은 주저하지 않고 그 문제를 잘 풀었다. 하도 대견하여 어떻게 이런 식을 적용하였냐고 물었더니 이런 때는 이런 식으로 풀으라고 학원에서 가르쳤다고 한다. 왜 이런 식을 적용해야 하는지 그 원리는 알지도 못하고 또한 알 필요도 없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래도 대학입시시험에서는 거뜬하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극히 사고력을 요하는 수학일지라도 차라리 문제유형을 달달 외우는 편이 시험성적을 잘 받기 위한 가장 확실한 방법인 것이다.

그렇다. 모든 것이 이와 같은 식이다. 오로지 시험성적을 위한 공부. 그것이 현재 우리 대부분의 교육현실이다. 설령 주입식 교육에 철저히 적응하여 좋은 성적을 얻고 좋은 대학에 가고 좋은 직장을 얻었다고 하자. 과연 그가 자신의 삶을 창의적으로 개척하고 즐길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인생은 그리 짧거나 단순하지 않은데 말이다.

70점 받았지만 배운 것을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 이를 응용하는 어린 B의 능력이 엄청 부러운 것은 오늘도 쉴새없이 학원가를 오가는 우리의 청소년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