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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우현선의 포구’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38건
기간
1993—2026

38건 · '우현선의 포구' · 산업·경제 · 최근 기사부터2 / 2쪽

  1. 2021.12.18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삽교천 통해 조세미 경창에 실어나르던 곳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합덕의 포구 1

    …)까지 인천행 여객선과 새우젓 등을 실은 어선이 오갔으나, 어업 중심의 포구를 이룰 만큼 어선과 어민들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마저도 1970년대 삽교천방조제의 건설과 교통의 발달로 바다와 합덕의 나루터를 오가는 배들은 사라졌다. 합덕읍 소…

  2. 2021.07.27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시루지 3 두봉산에서 채굴한 ‘백토’ 운반에 선박 이용

    …진 시루지에서는 주로 살매기와 맨손어업이 이뤄졌을 뿐, 배들이 정박하는 포구의 역할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루지와 인접한 두봉산에 풍진산업 당진광업소가 들어서면서 이곳에서 채취한 광석을 운반하는 선박이 정박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광업소…

    당진시대
  3. 2021.04.1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가곡리와 동곡리의 나루터 2 “썰물 때면 바지 걷고 걸어 다녔지”

    …곡리 은골과 쌍천동 송산면 동곡리에 남은 옛 지명 중 ‘은포’라 불리는 포구를 기억하는 이는 만나지 못했다. 다만 현재 송산방조제를 막은 지점에 은골이란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안평일 씨의 집은 앞마당에서 낚시대를 던지면 바다에 닿을 만큼…

    당진시대
  4. 2021.04.1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가곡리와 동곡리의 나루터 1가동염전과 소금 실어 나르던 두멍개

    …다가 막히기 전 두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바다에 기대어 살아왔다. 성구미포구가 대표적인 포구로 이름이 남았지만, 이전에는 가곡리와 동곡리 해안가 곳곳에 나루터가 존재했다. 옛 지명을 토대로 주민들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1919년과 현재의 송산면 지도…

    당진시대
  5. 2021.02.2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1당진의 관문이자 대표 항구 ‘오섬’

    조선시대 이전부터 당진은 해상교통이 발달했다. 포구의 기능도 주로 세곡 운반에 비중을 두었다. 육상교통이 발달하면서 포구들은 점차 쇠퇴해 이제는 옛 지명이나 문헌을 통해 당시의 명성을 가늠할 뿐이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많은 지역주민들에게 당진의…

    당진시대
  6. 2021.01.2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성구미포구 5통발로 만든 상에서 먹던 성구미 간재미무침

    …해안고속도로가 건설되면서 당진의 바닷가로 관광객들이 몰려들 무렵, 성구미포구도 외지에서 온 나들이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서해대교 놓고 고속도로가 딱 송악IC까지 밖에 개통을 안 했었거든. 그때 당시 성구미포구 포장마차가 옛날식으로 식탁도…

    당진시대
  7. 2021.01.0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성구미포구 2낭장배·실치배·통발어업 성행했던 황금어장

    1950년대 전까지 성구미포구에서는 중선배·유자망 어업이 이뤄졌고,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낭장망·자망 어업이 번성했다. ‘돼지배’라고도 불리는 낭장망은 한때 10여 척의 성구미포구 어선이 사용했던 주된 어업방식이었으나 현재는 단 두 척의 배만 남았…

    당진시대
  8. 2020.11.28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마항포구 1가장 먼저 사라진 신평의 포구

    신평지역의 포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사라진 곳은 마항포구다. 말목에 새우젓 장사를 하는 집이 있어 새우젓 실은 배들이 드나들었던 마항포구는 1970년대 초대천 하류에 해바라기농장(제일농장)을 만들기 위한 제방이 쌓이면서 바닷길이 끊겨 사라졌다. 이후 …

    당진시대
  9. 2020.09.1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깔판포구 4황해도에서 피난 온 이씨 일가 집성촌

    깔판포구에 살고 있는 이입분 씨는 첫 아이를 임신하던 해에 6.25 전쟁을 겪었다. 황해도 옹진군 가막개라는 마을에서 인천으로, 다시 연평도로 쫓겨 다니다, 21살에 당진 깔판포구에 정착했다. 첫 아이를 낳은 지 보름도 못 되어 갓난아기를 솜이불에 싸…

    당진시대
  10. 2020.09.05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깔판포구 3“말린 새우 지게에 지고 걸어서 당진장까지”

    1960년대 당시 박상진·차준희 씨 부부는 깔판포구에서 잡은 꽃새우를 말려 합덕에 위치한 상회에 팔았다. 지금도 김장철 배추 파동 등 농산물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문제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단다. 더군다나 도량형이 명확지 않고 판로가 많지…

    당진시대
  11. 2020.08.2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깔판포구 1 거적 깔아 꽃새우 말리던 ‘깔판포구’ 풍경

    현존하는 신평의 포구들은 삽교호관광지가 조성된 운정포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소규모 포구들이다. 그중에서도 깔판포구는 지역 어민들이 주로 이용할 뿐 관광객은 물론이고 지역주민들에게 조차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이런 깔판포구도 화려했던 전성기…

    당진시대
  12. 2020.06.01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운정포구 6“1950년대, 운정양수장 앞에서 눈장 했었다”

    1976년 삽교호방조제 건설이 시작되기 전까지 운정리 앞바다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으로 각종 수산물의 주요 서식지였다. 이곳에서는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어업 방식 중 하나인 ‘눈장’이 이뤄졌다. 눈장은 말짱(말뚝)을 바다에 박아 그물이 들…

    당진시대
  13. 2020.03.30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8 아이 업고, 머리에 생선 이고 피난민 이입분 할머니

    … 피난민 1세대로 매산리에서 60년 넘게 살고 있다. 피난 직후부터 맷돌포구와 깔판포구를 중심으로 맨손어업과 다라(대야) 장사를 이어왔다. “스물한 살에 내려와서 첫해는 그냥 굴 쪼아다 팔아먹고, 바지락 긁어다 먹고, 스물두 살 때부터 임장사를 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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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20.03.0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7 피난민들 어업에 종사하며 어업기술 보급

    …은 대게 황해도에서 어업에 종사했던 사람이거나, 논·밭이 많지 않은 곳 포구에 정착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일거리가 어업이었기 때문이란 것이 구술자들의 말이다. 박상진 씨는 “깔판포구에 터를 잡은 피난민 대부분이 바닷일을 해서 먹고 살았고 조금씩 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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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2020.03.02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6 바닷길 따라 피난 온 사람들

    …민이 발생했다. 이때 당진에도 피난민들이 배를 타고 대거 유입됐다. 맷돌포구 역시 피난민들의 유입지 중 하나였다. 맷돌포구와 깔판포구를 통해 유입된 피난민들은 매산리와 신흥리 등에 정착촌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피난민들은 초기에 주민들의 집마다 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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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20.02.25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5 강화도 어선, 맷돌포에 어막 짓고 조업

    1960년대부터 1970년대 초까지 맷돌포구가 가장 번성했던 당시, 대부분의 어선은 강화도 등지에서 온 것이었다. 강화 사람들은 중선, 꽁지배들로 봄부터 초겨울까지 맷돌포구에 머물면서 고기를 잡았다. 이들은 주로 봄철에 준치를 잡고, 뒤이어 숭어·꽃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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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020.02.17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4시계도 흔치 않던 시절 어부들의 지혜

    …를 저어 썰물 때 송산을 거쳐 국화도 앞까지 갔다가, 밀물 때 다시 맷돌포구로 돌아오며 고기를 잡았다. 준치·삼치 등이 주 어종이었단다. 어망은 그물을 고정시켜 잡는 낭장망을 사용했다. 박 씨는 낭장망이 6.25전쟁 때 피난 와서 정착한 황해도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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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2020.01.2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70년대 맷돌포구는 ‘고기광’이었지”[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1

    <편집자주> 당진시대방송미디어협동조합은 지난해 당진시가 추진한 당진포구문화구술사연구용역을 맡아 진행했다. 이 연구는 포구 일대의 주민들을 인터뷰해 당진지역 포구의 주민 생활문화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를 기록하고 연구한 것이다. 본지는 연구용역보고서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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