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08 · 문화·교육 · 한수미
EBS ‘한국의 둘레길’에 소개된 당진의 길
…방식으로 방송됐다. 1부는 ‘하늘과 대지 사이’란 주제로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 당시 축조한 면천 골정지부터 건곤일초정 등이 소개됐다. 또한 면천읍성과 안샘, 천 년이 넘은 은행나무, 아미산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을 거닐며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의 딸…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53건 · '조선시대 면천군' · 최근 기사부터2 / 3쪽
2022.07.08 · 문화·교육 · 한수미
…방식으로 방송됐다. 1부는 ‘하늘과 대지 사이’란 주제로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 당시 축조한 면천 골정지부터 건곤일초정 등이 소개됐다. 또한 면천읍성과 안샘, 천 년이 넘은 은행나무, 아미산까지 이어지는 둘레길을 거닐며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 장군의 딸…

2021.12.04 · 정책·행정 · 임아연
…군청사 3. 승리봉공원 4. 당진읍사무소 5. 옛 우물터 6. 원시가지 조선시대 당진현의 관아 자리였던 곳에 1914년 면천군과 당진현이 당진군으로 병합된 이후 최초의 군청사가 건립됐다. 오랫동안 당진에서 살아온 토박이 주민들은 어렴풋이 1950년대 …

2020.10.10 · 환경·안전 · 임아연
…분에 주목했다. 충남도와 경기도 간 경계 지점에 위치해 있는 영웅바위는 조선시대 중기(1530년)에 발행된 인문지리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영옹암(令翁巖)으로 기록돼 있으며,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영공암(令公巖)으로, 조선시대 후기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
2020.08.18 · 정책·행정 · 당진시대
…891년 9월1일> 그는 개명 당시 분교관이란 벼슬을 맡았었는데, 이는 조선시대 특별시와 같은 특수 지방 관청의 종 9품의 하급 벼슬이다. 그러나 고종이 이름까지 개명하도록 윤허했다는 것은 유제가 고종에게 각별한 관계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유제는…
2020.05.11 · 인물·동정 · 박경미
…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것으로, 대호지면 송전리에 자리해 있다. 정려는 조선시대에 충신, 효자, 열녀 등을 표창하고 그 정신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내린 현판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정려각을 따로 세우는 것이 많지만 이시경 정려는 그의 사당인 약산사의…
2019.05.10 · 문화·교육 · 한수미
…면 골정지를 만날 수 있다. 연암 박지원은 1797년부터 1800년까지 면천군수로 재직했을 당시 버려진 연못을 주변의 농경지로 관개하기 위해 수축한 곳이다. 골정지 위에는 ‘하늘과 땅 사이의 한 초가지붕 정자’라는 뜻의 건곤일초정이 있다. 봄이면 골정…

2019.03.15 · 문화·교육 · 한수미
…7년 퇴직하고 다시 고향에 터를 잡았다. 지금은 ‘순성면 봉소리’이지만 조선시대 때는 ‘면천군 덕두면 초전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그 이름을 따, 한 옹은 마을회관에 ‘초전충효교실’을 열고 마을 아이들에게 한자와 충·효·예절을 가르쳤다. 이후 각 학…
2018.11.13 · 문화·교육 · 한수미
… 했다. 수리농업·줄다리기 등 인문자산 다양 당진은 일찍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수리 중심의 농업, 활발한 상업 활동과, 근대계몽운동 등이 이뤄져왔다. 이용후생의 많은 자산을 갖고 있던 당진은 내륙에서는 수리농업, 해안에서는 교역이 활발하게 이뤄져…
2018.10.12 · 지역사회 · 김예나
면천면은 조선시대에 ‘면천군’이었을 정도로 당진의 중심지였다. 면천읍성을 중심으로 몽산성, 영탑사, 두견주, 면천은행나무, 승전목 등 역사·문화적 자원들이 많은 곳이 바로 면천이다. “한 발 양보하면 더 하나돼요” 17개 마을 이장들이 소속된 면천면 …
2017.08.26 · 인물·동정 · 당진시대
면천읍성 내에 2007년 복원된 풍락루(豊樂樓) 안내문에서는 1851년 면천군수 이관영(李觀永)이 건물을 짓고 군민들의 풍요를 빈다는 의미에서 풍락루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쓰여있다. 각종 인터넷 정보는 1851년 또는 1852년으로 되어 있다. 이관영은…
2017.04.11 · 문화·교육 · 한수미
…로 3대 민속주 중 하나다. 본래 면천은 백제의 혜군이었으며 1413년 면천군으로 승격됐다. 하지만 이후 행정구역이 개편되면서 당진군에 편입되며 면천면이 됐다. 면천은 지역의 서북쪽에 있는 높은 산에서 많은 천이 흐르고 있어, ‘천이 흘러 가득하다’라…
2017.03.24 · 정책·행정 · 임아연
… 문제로 우려하는 주민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게다가 면천면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면천군’이었을 정도로 중심지였다.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이곳에 기거했고, 그의 흔적이 골정지와 건곤일초정으로 남아 있다. 면천읍성을 중심으로 몽산성, 영탑사, 두…
2016.06.05 · 정책·행정 · 임아연
…부는 돌을 채운 후 흙으로 덮고 쌓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면천읍성은 조선시대 성을 쌓은 규정이 가장 잘 반영된 우수한 유적으로 해안에 위치하고 있는 읍성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2020년까지 복원사업 마무리 때문에 면천읍성은 지난…
2013.10.11 · 지역사회 · 임아연
…는 마을이름처럼 번영을 이뤘던 곳이다. 1914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면천군 중흥면의 소재지였다. 내년이면 면이 리로 바뀐지 100년을 맞는 중흥리는 크게 8개의 자연마을이 형성돼 있지만 무려 24개에 달하는 부락이 중흥리에 속해 있다. 지금도 중흥…
2013.07.12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내 마을의 유래 우강면은 창리(倉里), 강문리(江門里) 일대의 삽교천을 조선시대에 범근내(泛斤川)라고 부른데서 유래된 면천군 범천면(泛川面) 지역이다. 범근천(泛斤川)을 이두식으로 읽으면 범근내는 버그내가 된다.
2012.11.02 · 산업·경제 · 당진시대
1632년(인조10) 2월 13일 승정원일기는 면천군수를 파직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군왕 인조앞에서 있었음을 기록한다. 면천 목장에서 키워 올린 흑우(검은 소)가 체구가 작고 말라 국가 제사용으로 사용하기 곤란하다며 해당군수에게 관리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2012.10.24 · 정책·행정 · 당진시대
…고 하직인사를 한 뒤 면천으로 향한다. 이 기록은 승정원일기의 기록으로 조선시대 군왕과 군수의 하직인사 대면 기록으로는 거의 유일한 것이다. 이로부터 박지원은 면천으로 내려가 37개월 군수직을 수행하게 된다. 박지원은 양유리 저수지 축조, 골정제 보수…
2012.09.03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면천은 조선시대 329개 지방 행정 기구 중 100위권안에 드는 유력군으로 관아 시설이나 예산 등도 튼실 했다. 그러나 면천향교지에 전하는 역대 군수 명단은 매우 불완전한 것으로 조선실록에 등장하는 10여명의 면천군수를 합해도 턱 없이 부실(?)하다.…
2012.03.02 · 지역사회 · 우현선
…200명이 여자이며, 126명이 65세 이상의 노인이다. 양유리는 원래 면천군 죽림면 지역인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죽림면 양제리, 대촌리, 산유동과 내동, 척찬리 각 일부를 병합하고 양제리와 산유동에서 각각 한자씩 따서 양유리라 하여 당…
2011.09.26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남 합북 2개면이 되었고 고종 32년(1895)에 지방관제 개정에 따라 면천군에 편입되었다가 1914년 군·면 폐합에 따라 합남 합북 배방 3개면이 합하여 합덕현의 옛 이름을 따서 합덕면이라하여 당진군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 7월 1일 읍으로 승격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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