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1.18 · 문화·교육 · 한수미 기자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 그 후’ 남겨진 이들의 역사① 남기형 옹 “역사를 바로 알고 살아야 합니다”
….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증조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대해 자세한 말을 들려줬다. 그때야 비로소 대호지·천의장터에서 벌어졌던 4.4독립만세운동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남상돈 애국지사와 4.4만세운동 남상돈 애국지…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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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건 · '아버지가 살아야' · 최근 기사부터1 / 2쪽
2024.11.18 · 문화·교육 · 한수미 기자
…. 초등학교 2학년 무렵, 증조할머니가 세상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가 할아버지에 대해 자세한 말을 들려줬다. 그때야 비로소 대호지·천의장터에서 벌어졌던 4.4독립만세운동에 가까이 갈 수 있었다. 남상돈 애국지사와 4.4만세운동 남상돈 애국지…
2024.11.08 · 지역사회 · 한수미 기자
…년이 지나 28살 나이에 독립 만세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두 손녀는 할아버지가 일찍이 우리의 독립을 바라고 준비했을 것이라고 봤다. 독립 만세 운동을 하기 아주 훨씬 전, 서산에서 태어난 송재만 열사는 천안군으로 잠시 이적하면서 이때 본관을 ‘은진(…
2024.07.26 · 정책·행정 · 한수미 기자
… 유공자는 1919년 3월 25일, 독립운동이 일어나던 때에 태어났다. 아버지가 태어나고 열흘 정도 되었을 때 대호지·천의장터 4.4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큰고모가 6살, 큰아버지가 3살일 무렵이었다. 가장인 故 이규순 애국지사는 태형을 받고 …
2023.10.13 · 지역사회 · 유수아 취재기자
…히 내동은 소리벌이라고도 불렸다. 현재 한국민속예술협회 이금돈 이사장의 아버지가 내동 출신으로, 뛰어난 농악 실력을 갖고 있었다고. 대조동은 큰 새(大鳥), 즉 황새나 학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해서 이름 붙었으며 냉정골은 아미산에서부터 찬물이 내려오는 …
2023.09.15 · 문화·교육 · 유수아 취재기자
…겨 두 가게 모두 폐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슬럼프를 겪기도 했으나 아버지가 카페 운영을 제안하면서 다시 일어섰다. 카페를 운영하기 전, 바리스타 교육을 받으면서 처음 시도했던 커피맛은 형편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그래왔듯 끊임없이 시도하고 배우…
2020.09.11 · 문화·교육 · 김예나
…밤길 같아” 이 씨는 교사인 아버지 밑에서 부족함 없이 자랐다. 하지만 아버지가 하루아침에 교직을 그만두게 되면서 가정 형편이 기울어졌다. 결국 초등학교 졸업장도 받지 못한 채 교문을 나서야 했고, 작곡가의 꿈도 포기하고 이웃들의 콩 농사를 대신하며 …
2019.11.22 · 문화·교육 · 한수미
… 극복해 뒤에서 묵묵히 도와준 아버지였다. 하지만 지난해 불가피한 일로 아버지가 파키스탄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고작 13살의 나이에 아버지 없이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아야 했다. 레만 학생은 “아버지 없이 살 수 있을까 두려웠고 어린 마음에 많이 우울했…
2019.04.19 · 문화·교육 · 김예나
…를 모집하고 오는 27일부터 아버지학교 문을 연다. 두란노아버지학교는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라는 슬로건을 갖고 △아버지의 영향력 △아버지의 남성 △아버지의 사명 △아버지의 영성 △아버지와 가정 이라는 주제로 이뤄진다. 아버지학교는 오는 27일…
2016.08.20 · 문화·교육 · 품앗이학교 어린이 기자단
…펴고 싶은 할머니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성 노예로 살아야 했던 소녀들이 있다. 하루에 10명에서 많게는 50명을 상대해야 했던 그녀들의 중에는 고작 10대의 소녀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들은 이 생활을 그만 둘 자유도, 외부의 출입…
2016.05.14 · 문화·교육 · 김예나
…다. 가장 나이가 많은 회원은 85세로, 이들은 어릴 적부터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읊는 시조를 듣고 자란 세대다. 이에 자연스럽게 시조에 관심을 두면서 당진시우회로 모였다. 당진시우회는 1972년 남선우 시조연구회가 설립되면서 시조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
2016.01.22 · 지역사회 · 당진시대
…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벌써 조언까지 전하는 강 대표는 점차 아버지가 돼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강 대표도 불과 2년 전까진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던, 고민 많은 ‘청춘’이었다. 프랜차이즈 커피숍을 차리기 위해 3년간 근무했던 당진신협을 그…
2015.12.11 · 지역사회 · 김예나
…가 고객들의 궁금증을 자아낸다. 이 가위는 미용업에 종사했던 정 원장의 아버지가 사용했던 것으로, 1946년에 만들어졌다. 정 원장은 “이 가위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유품”이라며 “아버지의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 미용실에 걸어놨다”고 말했다. 이어 “매…
2015.12.03 · 문화·교육 · 임아연
…생각도 했다. 그런데 부모님 얼굴을 보니 눈물이 쏟아졌다. 이를 악물고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순간 새로운 인생이 시작됐다. 영화·드라마에 뛰어들다 힘들게 재활훈련을 하면서 조금씩 몸을 회복해 갔다. 수년이 흘렀다. 문득 운동을 하던 시절이 그리워…
2015.06.19 · 지역사회 · 한수미
…버지를 붙잡고 3개월 간 싸웠다. 하지만 아버지는 “너희는 대한민국에서 살아야 한다”는 말로 일관했다. 1997년 1월, 그는 꽁꽁 얼어붙은 압록강을 건넜다. 아버지가 압록강 경비원의 주의를 돌려놓았고 김 씨와 언니, 동생 그리고 엄마가 먼저 발을 내…
2014.12.19 · 지역사회 · 한수미
… 시계는 버리고 선풍기는 분질러 놓았다. 묻는 말에는 대답하지 않았으며 아버지가 죽어가던 그 때, 병원을 오라고 할 때도 오지 않았다. 아들이 마음의 문을 닫고 동굴 속으로 들어간지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인천에서 당진으로 20년 전 빚도 다 갚지 …
2013.11.22 · 환경·안전 · 한수미
…없이는 꼼짝도 하지 못했다. 부모는 자신들의 탓인 것 마냥 죄책감 속에 살아야 했다. 그들이 해줄 수 있는 거라곤 아들 곁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화재가 발생했던 그날도 아들은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큰아들네에 가 있어 집을 비운 상태였다. …
2013.10.11 · 지역사회 · 김창연
…실에 감사할 따름이었어요. 이런 모습들을 보다보니 주변 사람들을 도우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죽을 뻔한 이 끔찍한 사건을 계기로 안 대표는 지역사회에 봉사하며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굳힌 것이다. 그는 유아가 있는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 기저귀…
2013.08.30 · 문화·교육 · 임아연
…친구들 생각에 고향을 많이 그리워했다”고 말했다. 일찍이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지만 허투루 삶을 살 수가 없었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땀 흘려 번 돈으로 어렵사리 공부를 시킨 아버지가 떠올라 더 열심히 공부했다. 외할아버지가 늘 강조하던 재불여근(才…
2013.03.08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료했습니다. 이후 마음에 항상 자리하고 있는 다짐은 아버지학교 구호인 ‘아버지가 살아야 가정이 산다’입니다. 생활 속에서 이 다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며 살고 있습니다. 수료 이후 당진에서 아버지학교가 개설되면 스테프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재충전도하고…
2012.10.19 · 지역사회 · 임아연
…. 멀뚱히 있다가 주민번호를 확인했는데 그게 나더라고. 그제야 알았지.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 ‘재이랑’이라는 걸.”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느라 학교에 갈 여력도 없었다. 이따금씩 수수나 콩을 배급받아 먹었다. 먹고 살기 위해 남의 집에서 머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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