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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우현선의 포구’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38건
기간
1993—2026

38건 · '우현선의 포구' · 산업·경제 · 최근 기사부터1 / 2쪽

  1. 2024.08.16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석문편석문지역의 포구들(2) : 왜목항, 보덕포구, 마섬항

    …면서 채취선을 비롯하여 어선이 늘어나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다. ② 보덕포구 보덕포구는 석문면 보덕포로 582-65 보덕사 앞 천변 부근에 자리해 있다. 1970년대까지 석문면 삼화리에 위치했던 포구. 해안에서 내륙 쪽으로 깊숙이 들어온 자리에 위치하…

    당진시대
  2. 2024.05.10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석문편석문지역의 포구들(1)

    … 둘러싸여 반도적 위치를 갖고 있다. 당진의 14개 읍면동 중 현존하는 포구가 가장 많은 지역이며 동시에 대규모 어항이 가장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현재 석문면에 선착장을 비롯한 어항시설을 갖추고 선박의 출입이 원활한 포구로는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어 최…

    당진시대
  3. 2024.04.12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석문편 석문지역의 어업활동

    석문면의 포구 중 수산업이 발달한 포구는 시대별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석문면지」를 포함한 향토사료의 경우, 서술 범위가 조선시대 이전까지 포함하고 있어 본 연구조사의 범위 내 결과와는 다소 차이가 있었다. 예컨대 「석문면지」에서는 왜목이 큰 어선들…

    당진시대
  4. 2024.02.02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석문편 석문 어민들의 생활문화 변천사

    … 갯벌은 논이 되었다. 석문방조제 건설로 바닷물길이 끊긴 보덕포에는 옛 포구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특히 도비도와 교로2리, 삼화리에서는 방조제 건설 이전엔 맨손어업이 발달하여 어항시설이 있던 포구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정치망을 비롯한 전통어업이 활발히…

  5. 2024.01.1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석문편 석문방조제의 건설과 석문지역의 포구

    … 불러왔다. 당진의 대표적인 내포(內浦)였던 보덕포는 바닷길의 차단으로 포구의 기능을 상실했다. 석문방조제 건설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포구가 쇠퇴한 반면 장고항리의 마섬포구는 점차 활성화되었다. 마섬포구는 1960년대 이전만 해도 어선의 출입이 거의 없…

  6. 2023.08.27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정곡리의 나루터(1) 사둘고지와 벌그버리

    <송악면지>에 따르면 송악읍 정곡리는 저산성 평야지대로 마을의 향배는 북동쪽의 송산간척지의 흐름에 따라 현대제철과 남양만쪽으로 향하고 있다. (중략) 1974년 준공한 신흥개발농장과 1991년에 준공한 송산간척지의 연안에 인접한 대단위 농업진흥지역에 …

    당진시대
  7. 2023.08.1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가락포구(1) 해산물·젓갈·소금 실은 배가 오가던 작은 포구

    …이 드나들어 해산물과 젓갈, 소금, 옹기 등을 실은 배들이 오가는 작은 포구가 존재하였다. 이 포구의 이름이 가락포구다. 도원리에 바닷물의 흐름이 차단된 건, 1976년 준공된 제일농장 방조제로 초대천 하구가 막혔기 때문이다. 제일농장(당시 해바라기농…

    당진시대
  8. 2023.05.05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안섬포구 1 송악에서 가장 큰 섬이었던 ‘안섬’

    현재 송악읍에는 섬이 존재하지 않지만, 남양만과 아산만에 접해 있고 리아스식 해안이 발달하여 여러 개의 섬이 존재하였다. 특히 바닷물이 송악읍의 고대리, 월곡리, 정곡리를 지나 석포리까지 드나들면서 내륙에 형성된 내포(內浦)가 발달하였다. 송악 지역에…

    당진시대
  9. 2023.03.1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한진포구 1, 과거 아산만 일대 가장 큰 규모의 포구

    …북쪽 끝 행담도와 서해대교가 마주보이는 아산만 어귀에 자리하고 있는 한진포구는 당진을 대표하는 포구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대진(大津)은 신평현에 있고 북쪽으로 114리에 있다”고 쓰여 있는데, 여기에서 언급한 대진이 바로 한진을 일컫는다.…

    당진시대
  10. 2023.01.1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삽교호 내수면농업과 어업 겸해…새우·동자개·붕어 등 잡혀

    삽교호 내수면에는 총 4개의 어업계가 존재한다. 신평의 운정어업계와 우강·합덕을 포함하는 삽교호내수면어업계, 아산의 선장어업계·인주어업계 등이다. 당진에서는 신평의 운정어업계가 먼저 결성되었다. 운정내수면어업계라 부르는 어촌계가 결성된 지는 10여 년…

    당진시대
  11. 2023.01.0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삽교천 내에 위치한 소들섬과 솟벌섬[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삽교호 내수면

    …뤄지고 있는 곳은 삽교호 내수면이 유일하다. 우강·합덕·순성지역의 모든 포구와 나루는 삽교천방조제 건설 이후, 그 역할과 기능을 상실했다. 삽교천이 막히고 난 이후에도 그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일부 어민들이 삽교호 내수면에서 개막과 정치망 등을 이용한 …

  12. 2022.09.30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수문통 7수문통의산증인어민장원식씨(2)

    장원식 씨는 1960년대부터 삽교천 방조제 건설이 시작되기 전까지, 운정 리 앞바다(지금의 삽교천 하구)에서 눈장으로 물고기를 잡았다. 눈장에 사 용되는 말뚝은 신평에 배를 대고 인근 산에 가서 사왔다. ”우리는 눈장이라고 말뚝 받아놓고 그물 쳐 놓고…

    당진시대
  13. 2022.09.1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수문통 6 수문통의 산증인 어민 장원식 씨(1)

    수문통에서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장원식 씨는 13세부터 어업을 시작했다. 어린 시절 그의 기억에 따르면 수문통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가구가 거주했으며, 생선을 사러 온 상인들과 인천행 여객선을 타기 위해 온 승객, 쌀을 실어 나르는 인부들로 늘 붐볐다…

  14. 2022.07.2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수문통 1 인천행 여객선 기착지였던 곳

    수문통은 우강면 신촌리 3반으로 아산만으로 흘러드는 삽교천 물줄기가 신촌리와 부장리의 경계로 갈라지는 지점 튀어나온 곶에 위치한 작은 마을이다. 옛날에는 이곳을 우평포(牛坪浦)라 칭했다. 1960년대까지 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였던 수문통은 조수간만의 …

  15. 2022.07.11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7달을 보고 물때 알아…큰 파도와 싸웠던 기억

    정기수 씨의 배에는 선주인 자신을 포함해 모두 네 명의 선원이 함께 탔다. 동력 장치 없는 풍선(風船), 돛배였다. 선원들의 월급은 잡은 물고기로 지급했다. 판매는 당시 하리에 살던 어촌계장 홍헌팔 씨가 주로 맡아서 해주었다. 물때는 밤하늘 달을 보고…

    당진시대
  16. 2022.07.0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6

    …기 전에는 복(伏) 중이면 삽교천에서 해파리도 잡혔다. 정기수 씨는 운정포구의 한 어민에게 해파리잡이에 필요한 어구를 빌려 사용했다. “해파린 복 때나 잡어. 초복·중복·말복이 지나면 없어지는디, 저 구양도다리께 저쪽 막은디 그 골이 원 큰 골이었어.…

  17. 2022.06.13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4 한국전쟁 이후 피난민 중심으로 어업활동

    한때는 남원포구에 어선이 수십여 척이 정박했다고 하나, 구술에 참여한 주민들은 1960년대를 전후로 포구에 어선은 많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대신 부장리의 어선들은 남원천을 따라 곳곳에 정박했다고. 주로 한국전쟁 당시 피난 와서 부장리에 정착한 피난민들…

  18. 2022.04.11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우강면 부장리 남원포구 1 우강에서 가장 번화했던 포구

    우강면 부장리에 위치한 남원포구는 강문리의 사발포(부리포)와 더불어 1970년대까지 우강에서 가장 번화한 포구였다. 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였으며, 남원포구를 중심으로 상권이 형성돼 사람들로 늘 북적였다. 부장리농협이 설립되면서 부장리는 물론, 인근 마…

    당진시대
  19. 2022.01.10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합덕의 포구 인천행 배가 오가던 번화했던 구양도포구

    …없어졌죠.” (원종성) 인천행 여객선과 화물선, 어선들이 드나들던 구양도포구에는 자연히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다. 예당평야에서 생산된 쌀을 도정하는 방앗간은 물론, 술집도 여러 곳이었다. 구양도포구에 이름난 술집으로는 ‘양촌집’이라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20. 2021.12.27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합덕의 포구 구양도 다리 밑에서 곤쟁이 잡던 어민들

    …한국전쟁도 구양도에서 겪었다.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린 시절 구양도포구로 배가 드나들고 갯벌에 나문쟁이가 지천이었던 풍경이다. “그전엔 여기에 조수가 들락날락하니까 많은 배가 다녔죠. 저 들판에 나문재라는 게 많이 났었고. 황발이라고 발 커다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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