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9.12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송악의 포구 지명으로만 남은 옛 포구의 흔적
반촌리의 승선 : 대촌 북쪽 오룡산 밑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배를 대고 배를 타던 곳, 또는 오룡산에서 신선이 올랐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승선천이 그려져 있는데 현재의 남원천 본류로 나타나 있다. 반촌리의 대터골 : 예전에 배…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39건 · '우현선의 포구' · 지역사회 · 최근 기사부터1 / 2쪽
2023.09.12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반촌리의 승선 : 대촌 북쪽 오룡산 밑에 있는 마을로 옛날에 배를 대고 배를 타던 곳, 또는 오룡산에서 신선이 올랐다는 것에서 유래되었다.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는 승선천이 그려져 있는데 현재의 남원천 본류로 나타나 있다. 반촌리의 대터골 : 예전에 배…
2023.03.0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현재의 북창교가 놓이기 전에는 나무로 된 다리가 있었다. 약 60년 전까지 순성면 중방1리 북창교 밑까지 조그만 새우젓 배가 인천에서 남원포까지 동력선으로 내려오면 다시 노 젓는 배로 북창다리 밑까지 들어 왔다. 다리 옆에 큰 박달나무가 있어 이 나무…
2023.02.2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지역주민들이 어린 시절부터 직접 목격하고 경험한 포구 외에도 구전으로 전해지는 옛 포구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대부분 마을의 자연부락명에 얽힌 이야기들로, 더러는 고목과 하천을 통해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곳은 우강면 송산리의…
2023.02.1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내포사업장은 1963년 전영익 씨의 주도 하에 내경리·대포리·소반리 등 3개 마을의 주민들이 연명 날인해 구성한 조합을 중심으로 진행된 공수면 간척사업장이다. 제방 1850m, 농지 18만 평을 개발한 내포사업장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된 신촌사업장 등과…
2023.01.20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를 제외한 우강의 포구들은 갯고랑 끝자락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포구들이었다. 이런 포구들은 주로 어업에 종사하는 인근 마을 주민들이 집과 가까운 갯고랑에 배를 대거나 봄·가을에 새우젓을 실은 어선들이 드나드는 정도로 이용됐다. 어…
2023.01.01 · 지역사회 · 임아연
내경리(內鯨里) 지명은 고래가 조수를 따라 들어왔다가 죽은 후 그곳에 제방을 쌓은 데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다. 내경리는 오래전부터 고래가 많이 발견된다고 하여 ‘고래원’이라고도 불렸다. 방조제가 생기기 전 내경리에는 바닷물이 드나들었는데 조수 차가 …

2022.11.0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소반리 마을회관에서 옛 대두런포구의 위치를 찾아가자면 소포의 옛 제방을 지나게 된다. 승용차 한 대가 빠듯하게 지나다닐 정도의 좁은 마을 안길은 1970년대 삽교천방조제가 건설되기 전까지 소포로 바닷물이 넘치는 걸 막아주던 제방이었다. 옛 제방을 중심…
2022.09.02 · 지역사회 · 임아연
…람으로 주민들이 피해를 입어 왔다. 가장 큰 피해는 농사처의 염해였다. 포구에 가옥이 밀집하였던 수문통의 경우 집 안까지 바닷물이 범람하기도 했다. “어렸을 적에는 여기 수문통 부근 둑이 한 번 터진 걸 내가 봤어. 둑이 터져서 물이 넘쳤지. 그때는 …

2022.08.1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일제강점기부터 인천행 여객선이 당진의 여러 포구를 왕래했다. 수문통은 이 여객선의 기착지 중 한 곳이었다. 인천행 여객선은 송악의 한진과 신평의 맷돌포·공포(운정)를 거쳐 우강의 남원포, 수문통을 지나 강문리의 부리포까지 드나들었다. 하지만 점차 토사…
2022.06.2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강면 주민들은 옛 포구에 대한 기억으로 모두 ‘이합’을 언급했다. 껍데기가 하얗고 바지락과 유사한 이합 조개는 썰물 때면 드러나는 삽교천 갯고랑에 지천이었다. 부장리 사람들도 너나할 것 없이 이합을 채취해 먹었다. 특히 이합칼국수는 뽀얗고 감칠맛 나…
2022.04.2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강면 부장리와 신평면 신흥리, 신당리 사이로 흐르는 남원천에는 남원포교(구교)가 놓여있다. 이 다리는 애초에 나무다리였으나 1965년 10월 5일부터 1966년 11월 13일까지 총연장 14m, 폭 6m, 설계하중(DB) 13.5톤, 통과하중 54톤…
2022.03.0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독개나루 인근 마을 사람들은 1년에 한 번 쌀로 운임을 지불했다. 이용하는 빈도에 따라 운임을 달리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인근 마을 주민 중에는 도고장이나 선장장으로 채소나 생선 등을 팔러 다니는 이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일반주민들보다 더 많은 양의 …
2022.02.20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독개나루는 합덕읍 신흥리와 우강면 내경리에서 아산시 선장면 궁평리 모새절로 가는 나루다. 독개나루는 삽교천 연변에 사는 합덕과 우강의 들 사람들이 식수가 나빠서 독개나루에서 나룻배를 타고 삽교천을 건너가 선장에서 식수를 구해 오던 곳이었다. 옛날에는 …
2022.02.15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일한 육상교통로로서도 중요한 곳이었다. 이러한 구양도다리 아래에 구양도 포구가 형성되어 있었다. 구양도다리와 관련된 옛 신문기사를 통해 구양도 다리까지 바닷물이 드나들던 당시의 풍경과 시대상을 엿볼 수 있다. 우현선 작가
2022.01.24 · 지역사회 · 당진시대
“6.25 전쟁 전에는요, 여름에는 (모기나 열대야 때문에) 집에서 자기 힘들서 구양도 다리에 가서 많이 잤어요. 그전엔 차라는 것이 없었으니까 다리 양 머리에 쭉 돗자리 깔고 거기서 잤죠. 아침에는 일하러 가고 저녁이면 구양도 다리에 가서 자고. 그…
2021.08.0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러한 이유로 송산면 내륙에는 새우젓이나 소금 실은 배들이 정박했던 작은 포구들이 다수 존재했다. 과거에 있었던 포구들은 여전히 마을의 옛 지명으로 남아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그 흔적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송산면의 무수리, 삼월리, 송석리 일…
2021.07.1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시루지에는 살매기를 하는 이들이 물 때를 기다리기 위해 만든 임시초소인 ‘살막’도 있었다. 해변가에 움막 형태로 지은 살막은 저마다 살 맨 곳이 잘 내다보이는 곳에 지었다. 살을 맨 사람들은 참봉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떡이며 음식을 가져다 놓고 제를 …
2021.07.12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시루지에서는 살 말고도 조립식 휴대어망으로 고기를 잡는 사둘질도 이뤄졌다. 물이 쓰면 낙지도 많이 잡혔다. “시루지 앞바다에 뻘이 길게 빠지면 낙지가 무지하게 잡았어요. 거기 가면 암만 못 잡아도 50~60마리, 많이 잡으면 150마리씩 잡았다고. ‘…
2021.07.0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모래해변이 길게 펼쳐진 시루지는 지역주민들의 옛 추억이 가득한 소풍장소였다. 날씨가 온화할 때 신루, 즉 신기루가 잘 나타났다 하여 신루지 마을로 불리다 시루지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두봉산에 오르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 물안개가 번지는 풍경이 …
2021.06.0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김성권) 당산리 일대에서 활발히 이뤄졌던 당제를 비롯한 민간신앙은 주로 포구를 드나드는 뱃사람들의 안위와 마을의 안녕을 위해 오래도록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바닷길이 막히면서 포구의 규모가 줄어들고 배들의 왕래가 끊기면서 점차적으로 당제와 같은 …
당진시대 아카이브에 보관된 기사입니다. © 당진시대. 정식판은 각 기사의 원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