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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우현선의 포구’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28건
연도
2020년

28건 · '우현선의 포구' · 2020년 · 최근 기사부터1 / 2쪽

  1. 2020.12.16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마항포구 2“새우젓집 뒷마당에 커다란 독이 가득”

    송악읍 도원리 출신인 송화섭 씨와 박영규 씨도 말목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다. 말목까지 바닷물이 드나들던 어린 시절, 윤장성 씨네 집 뒷마당에서 새우젓 담은 커다란 독을 보았던 기억이 지금도 남아 있다. “지금 초대천 다리를 놓은 곳에 이전에도 물…

    당진시대
  2. 2020.12.14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성구미포구 1 허기져서 ‘허기고개’, 갯구랑이 왔다갔다 ‘갯구덕’

    송산의 아름다운 포구, 성구미는 이제 사라지고 없다. 성구미 앞바다에 그물을 던져 고기를 건져 올리던 어민과, 유쾌한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던 포장마차의 정 많던 상인들은 모두 성구미를 떠났다. 그러나 고향 마을을 잃어버린 주민들의 마음에는 여전히 아름…

    당진시대
  3. 2020.11.28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마항포구 1가장 먼저 사라진 신평의 포구

    신평지역의 포구들 가운데 가장 먼저 사라진 곳은 마항포구다. 말목에 새우젓 장사를 하는 집이 있어 새우젓 실은 배들이 드나들었던 마항포구는 1970년대 초대천 하류에 해바라기농장(제일농장)을 만들기 위한 제방이 쌓이면서 바닷길이 끊겨 사라졌다. 이후 …

    당진시대
  4. 2020.10.31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행담포구 4 조용한 섬마을에 날아든 개발 소식

    조용한 섬마을에 개발 소식이 날아든 건 1990년대 후반 무렵이다. 행담포구 주민들에게 서해안고속도로 개발로 서해대교가 섬을 관통하게 된다는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과 같았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할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게다가 주민들 대…

    당진시대
  5. 2020.10.24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행담포구 4바다 얼어 헬기로 생필품 나르기도

    행담도 사람들의 주요 생계수단이 맨손어업이었던 탓인지 1970년대만 해도 섬에는 개인이 소유한 배가 단 한 척도 없었단다. 채취한 해산물은 평택 만호리에서 온 배가 실어 갔다. 마을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행담분교에 근무하는 교사를 위해 교육청에서 마련해…

    당진시대
  6. 2020.10.1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행담포구 3새마을주택 살며 굴 따고 낙지 잡아

    표선동 씨는 1975년 어머니, 아내와 함께 굴양식장을 운영하기 위해 행담도에 입도했다. 표 씨가 행담도에 들어갔을 때, 섬에는 모두 11가구가 거주하고 있었다. “당진군에서 새마을주택이라고 지어준 게 있어요. 한 동에 두 집이 살았거든. 둘씩 살아서…

    당진시대
  7. 2020.09.28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행담포구 1거대한 갯벌이 생활 터전…어선 한 척 없던 행담도

    …다. 굴이며 바지락, 낙지가 섬사람들의 주된 소득원이었다. 신평면 일대 포구에 살던 어민들도 행담도 앞에서 조업을 했고, 바지락이며 굴을 땄다. 1970년대까지 행담도에는 어선을 가진 주민들이 없었다. 당시 행담분교에 근무하는 교사를 위해 교육청에서 …

    당진시대
  8. 2020.09.1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깔판포구 4황해도에서 피난 온 이씨 일가 집성촌

    깔판포구에 살고 있는 이입분 씨는 첫 아이를 임신하던 해에 6.25 전쟁을 겪었다. 황해도 옹진군 가막개라는 마을에서 인천으로, 다시 연평도로 쫓겨 다니다, 21살에 당진 깔판포구에 정착했다. 첫 아이를 낳은 지 보름도 못 되어 갓난아기를 솜이불에 싸…

    당진시대
  9. 2020.09.05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깔판포구 3“말린 새우 지게에 지고 걸어서 당진장까지”

    1960년대 당시 박상진·차준희 씨 부부는 깔판포구에서 잡은 꽃새우를 말려 합덕에 위치한 상회에 팔았다. 지금도 김장철 배추 파동 등 농산물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이 문제지만, 당시에는 그 정도가 더 심했단다. 더군다나 도량형이 명확지 않고 판로가 많지…

    당진시대
  10. 2020.08.31 · 정책·행정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깔판포구 2진달래꽃 필 무렵 잡던 빨간 꽃새우

    1960년대를 전후로 깔판포구에서는 맷돌포구와 마찬가지로 새우잡이가 주를 이뤘다. 특히 봄철에 잡아 올리는 꽃새우가 유명했다. “강화도 배들이 꽃새우를 잡으러 이리 온 거야. 뭐 몇십 척이 왔지. 여기 와가지고 그쪽 깔판에서 새우를 말렸다고.” (노이…

    당진시대
  11. 2020.08.2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깔판포구 1 거적 깔아 꽃새우 말리던 ‘깔판포구’ 풍경

    현존하는 신평의 포구들은 삽교호관광지가 조성된 운정포구를 제외하면 대부분이 소규모 포구들이다. 그중에서도 깔판포구는 지역 어민들이 주로 이용할 뿐 관광객은 물론이고 지역주민들에게 조차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하지만 이런 깔판포구도 화려했던 전성기…

    당진시대
  12. 2020.07.28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음섬포구 5

    제일농장 방조제가 막히기 전인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음섬포구에는 어선이 많지 않았다. 구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목선 서너 척이 전부였던 것으로 보인다. “옛날에는 목선 조그만 걸 노 저어서 다니던 풍선 있잖어. 그걸로 새우잡이를 했어. 어렸을 …

    당진시대
  13. 2020.06.06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운정포구 7 운정리에서 ‘화염’ 생산한 김씨네 5형제

    지금은 염전이라면 흔히들 천일제염을 떠올리지만, 그것 말고도 자염이란 생산 방식이 하나 더 있다. 자염은 바닷물의 염도를 높인 뒤에 끓여서 소금을 석출하는 방식이다. 화염, 전오염, 육염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천일염은 일제강점기 때 국내에 들어왔으며…

    당진시대
  14. 2020.06.01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운정포구 6“1950년대, 운정양수장 앞에서 눈장 했었다”

    1976년 삽교호방조제 건설이 시작되기 전까지 운정리 앞바다는 민물과 바닷물이 만나는 지점으로 각종 수산물의 주요 서식지였다. 이곳에서는 지금은 찾아보기 어려운 전통어업 방식 중 하나인 ‘눈장’이 이뤄졌다. 눈장은 말짱(말뚝)을 바다에 박아 그물이 들…

    당진시대
  15. 2020.05.25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운정포구 5영흥펄·진강펄·새펄…아산만의 갯벌

    …여전히 인근 어민들이 백합을 채취하고 있다. 상대펄은 신평면 매산리 깔판포구와 맷돌포 사이 앞바다에 위치하는 펄이다. “저기 삽교천을 막기 전 민물 있는디 거기가 대합 잡는 데여. 그 아래로는 바지락 잡는 데고. 대합은 대칼이라고 지게 마냥 생겼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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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20.05.18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운정포구 4“수십만 평 갯벌에 백합이 수두룩”

    …거나, 간척돼 논으로 이용돼왔다. 운정리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옛 시절, 포구에서 잡아 올린 수산물을 언급할 때 반드시 ‘백합’을 언급했다. “한진 위에서부터 이 위까지 지금 여기 막힌디, 여기 안이두 뻘이 모래뻘이 겁나게 지다랗게 크다구. 일명 지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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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2020.05.04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운정포구 2공뿌리 장수바위는 사라지고…

    … 공포의 흔적은 사라지고 없지만, 여전히 그곳에 사는 주민들을 통해 옛 포구에 대한 모습을 그려볼 수 있다. “옛날 우리 살던 집이 포구하고 멀어야 300m쯤 떨어졌을까. 바로 바닷가 모래사장 앞이었어. 그때 선창도 없어서 돌을 징검징검 짚고 다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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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2020.04.20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12처음 배 띄우는 날 만선 기원하며 오색깃발 선물

    구술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1970년대까지만 해도 맷돌포구에서 뱃고사가 이뤄졌다. 1950년대 이후 마을 사람들이 다함께 치르는 풍어제나 당제 같은 어업활동과 관련한 대규모 민속행사는 없었으나 정월대보름 풍물놀이는 행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내가 5톤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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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2020.03.30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8 아이 업고, 머리에 생선 이고 피난민 이입분 할머니

    … 피난민 1세대로 매산리에서 60년 넘게 살고 있다. 피난 직후부터 맷돌포구와 깔판포구를 중심으로 맨손어업과 다라(대야) 장사를 이어왔다. “스물한 살에 내려와서 첫해는 그냥 굴 쪼아다 팔아먹고, 바지락 긁어다 먹고, 스물두 살 때부터 임장사를 한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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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020.03.2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맷돌포구 9 인천행 증기선 ‘똑땍이’ 기착지

    …리 공포와 함께 인천행 여객선의 기착지였다. 신평면지에 따르면 맷돌포가 포구로서 중요성이 부각된 것은 한국전쟁 이후의 일이다. 인천과 당진 일대를 운행하던 증기선을 당진지역 주민들은 ‘똑땍이’라 불렀다. 이 여객선은 당시 인천을 오가는 주요 교통수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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