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동명 기업의 이효례(64) 사장은 자신을 재미있는 할머니라고 소개하며 우스개 소리로 말문을 열었지만 그의 이력은 만만치가 않았다.
“뒤돌아보면 저는 가만히 있을 팔자가 아니었나봐요. 끝없이 무엇인가를 추구하면서 살았죠. 처음 기업활동을 시작할 때도 적극적으로 달라붙었어요.”
지난 1960년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한 그는 여고에서 교직생활을 시작했다. 6년이 흘러 교직생활에 실증을 느낄 즈음 과감히 교직을 사임한 그는 집 주변의 건설회사 사장을 찾아가 어디에라도 써달라고 애원했다.
“제가 어디에 있든 무슨 일을 하든 잘 할 것처럼 보였나봐요. 그 사장이 섬유업계를 추천해줘서 그 업계에 처음으로 뛰어들게 됐죠. 그때 느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순수하게 적극적으로 접근하면 반드시 결과를 얻어낼 수 있다는 걸.”
1968년 경공업이 한창 일어날 때 그는 고향인 부산에서 대기업의 하청업체 격인 섬유제품수출업체 ‘동명사’를 창업했고 성장을 거듭해 4년 후 독립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3D직업기피현상과 유휴노동력 감소, 미국의 무역규제, 경공업의 쇠퇴현상 등 복합적인 난관에 봉착해 22년 후인 1990년 회사를 정리해야 했다.
“한때는 직원이 1,200명을 넘었던 회사였죠. 동명사를 정리하는 데에 총 3년의 시간이 걸렸어요. 동명사를 정리하고 남은 자금으로 프라스틱제품제조업체인 (주)동명을 당진에서 창업했죠. 대중국 무역 등 서해안의 발전가능성과 물류비용 절감 측면에서 당진이 제격이었어요.”
지난 1990년 3월 그는 고대면 장항리에 (주)동명을 창업했다. 매년 40억원의 매출과 30만불의 수출을 기록하고 있는 (주)동명은 지난 2000년 8월 중소기업은행으로부터 유망중소기업과 우량기업으로 지정돼 그 성장가능성을 인정받았다. 또한 그는 2000년 6월2일 충남 우수기업인상을 수상했으며 올해 1월 ISO14000 품질시스템 규격을 획득했다. 기업의 생존 사이클이 짧아진 만큼 빨리 변하는 것, 말하자면 새로운 패러다임에 발빠르게 적응하는 것이 그의 성공비결이다.
기업인으로서 여성에게만 한정된 사회의 편견과 장애물들을 극복하기가 수월치 않았을 텐데 그의 생각은 이미 성차별과 남녀평등을 넘어서고 있었다.
“여성들이 아직 깨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남녀평등과 성차별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이미 과거의 개념 아닌가요. 이렇게 말하면 저를 공격하는 여성들도 많겠지만 사람과 사람, 사회의 한 일원으로 여성이 바로서야 합니다.”
여성 스스로 깨어나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것, 그건 32년간의 기업활동을 통해 체득한 그의 지론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