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현경이라는 여자가 있다.
나중에는 ‘정’이라는 성씨를 빼고 현경으로만 불리길 원했던 여자다. 그럭저럭한 부모밑에서 자랐지만 친모는 무당이었고 아버지는 얼굴도 보지 못한 한많은 한국여자다. 그러나 아시아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되고 권위있는 미국 유니온신학교에 종신교수로 초빙돼 세계 강단을 누비는 여자다. 나이는 이제 오십줄이다. 지난해에 그녀가 쓴 책 를 읽고나서 드문 감동을 받았었다.
이미 구축된 기득권을 누리는 남성에 비하면 여성은 스스로 자신의 삶과 역사를 창조하며 인류의 역사속에 생명의 지평을 열어가는 존재다. 여성은 ‘자궁’이라는, 생명과 우주를 연결한 기관을 가지고 있어서 태생적으로 창조적이고 역동적이며 자비롭다. 그러나 라는 말처럼 여성의 삶과 역사는 아직도 한(恨)과 제약과 고통과 투쟁의 세계사다. 현경은 이런 여성의 위치와 여성 고유의 아름다운 힘을 소설처럼 그려냈다.
그녀는 동양의 신비적이고 통합적인 요소와 서양의 분석적이고 논리적인 철학, 그리고 신학을 절묘하게 결합한 독특한 사상으로 세계각국의 양식있는 여성과 남성들을 매료시켰다. 또한 ‘끼’와 ‘춤’으로 자신과 상처받은 세계의 여성들을 치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녀는 한국의 불교를 비롯해 세계 각국의 종교와 여신을 사랑하고 불교수행과정인 ‘1백일 동안거’에도 참가했던, 말하자면 신학자이자 불교수행자로서 종교의 경계도 스스로 허문 여자다. 그녀 자신이 지구상에 새로운 종족처럼 신비롭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데 이토록 화려하고 풍부한 이력의 그녀에게서 정작 감동받고 애착을 느끼게 된 것은 그녀가 자신이 여자라는 사실과 한국의 것, 우리 전통과 민속을 통해 내려오는 것, 한국사람, 한국말, 이런 것들을 너무 아낀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친모가 무속인이라는 사실과 모친을 닮아 강한 이미지를 주는 얼굴, 무속이 주는 신비적인 체험들조차 모두 존중하고 사랑했으며 그것들로 자신의 고유한 세계를 이루는 데 조금도 주저하지 않았다. 창조는 자신을 긍정하는 데서 출발함을 그녀는 보여주었다.
현경이라는 이름은 그녀가 자신의 과거와 주변을 이루는 모든 복잡한 이력들을 뛰어넘어 자기자신으로서 존재한다는 독립선언이지만 그녀는 자신의 모든 과정을 사랑하고 자신이 그 위에 존재함을 잊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녀는 병적인 요소가 만연한 이 시대와 지구 위의 사람들을 위해 여성들의 가장 여성적인 요소를 대안으로 내세우며 라는 독특한 한국형 신조어를 만들어 세계만방에 퍼뜨리고 있다.
‘살림’이라는 순 우리말에 무슨무슨 주의자라고 부를 때 쓰는 -이스트(예:테러리스트)라는 말을 섞어 구성한 이 말은 예술처럼 아름답고 무한히 포용적이며 자비로운 동시에 생동하는 그녀만의 사상과 느낌의 핵심이다.
예로부터 지금까지, 노인부터 아이까지, 봄부터 겨울까지, ‘살림’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면 인류의 삶도 없다. ‘살림’은 ‘삶’보다 먼저 있고 더 위대하다. ‘살린다’는 것은 ‘산다’는 것보다 한 차원 더 승화된 태도이고 행동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사람을 ‘살리는’ 여성의 능력과 지혜와 사랑이야말로 세상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는, 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그녀는 얼마 전에 한국의 한 방송에 나와 다시 말했다. 이말들은 참 토속적이면서도 현대적이고 세계적이다. “여성들이여. 살림이스트여. 나를 살리고 너를 살리고 모두를 살려라. 그러기 위해 먼저 자신의 살과 한을 풀어라. 그리고 그대의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하라.” 그리고 그녀는 이렇게 덧붙였다. “나는 반드시 ‘살림’이라는 한국말을 브리태니커 세계대백과사전에 올려놓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