東豆川 1

김 명 인

출근 지하철 안에서 새파란 처녀가

젖은 머리칼을 휘휘 내두르며

친구랑 떠들고 있다

신문 읽는 내 손등에 목덜미에

물이 뚝뚝 떨어져

옷 속으로 스며들었다

덩달아 신문도 젖어버렸다

소녀 시절

여러 번 같은 꿈을 꾸었다

누군가 붓에다 먹을 찍어

내 얼굴에다 자꾸 글씨를 썼다

눈을 떠보면(여전히 꿈속이었지만)

내 얼굴에 글씨를 쓰는 사람의

얼굴도 글씨로 가득했다

(그는 누구였을까)

(무슨 글자들이었을까)

실제로 출판사에 다닐 땐 내 입 안에

글씨로 엉킨 실 뭉치가 가득 찬

날도 있었다

(결핵성 늑막염으로 가래를 퉤퉤

뱉고 다녔다)

집에 돌아와 목욕탕에서 거울을 보며

먹을 찍어 얼굴에

글씨를 써보았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그 시절 내 얼굴에 글씨를

쓰던 사람의 얼굴을 보고 말았다

- 1946년 경북 울진 출생, 고려대 국문과 졸업

-1973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시 '출항제' 당선 등단

-현재 고려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소월시문학상(1992), 현대문학상(2000), 이산문학상(2001)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