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악면 부곡1리의 마을 대동회를 찾은 이후 2007년 마지막날인 지난달 31일 월곡리를 찾아갔다.
눈발 내리는 날씨에 매서운 찬바람까지 영하의 날씨. 월곡리 마을 회관에는 마을 주민들이 모여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쪽방에서는 부녀자들이 윷놀이를 하며 소일을 하고 있었다.
월곡리 박상현(76) 노인회장은 “매일 마을주민들이 모여 앉으면 온통 경제자유구역 이야기뿐이다”며 “수용당하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모두들 막막하기만 하다”고 마을 분위기를 전했다. 27살이 되던 해에 월곡리로 이사왔다는 박상현 노인회장은 고령의 나이에도 15마지기 가량의 논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다.
“내거 하고 남의 것 다섯 마지기를 빌려서 농사를 지었는데 올해부터는 그마저도 못지을 것 같아 내놨어. 그거라도 농사지면서 근근이 살아왔는데 말이여.”
월곡리 마을은 다른 지역보다 형편이 더 어렵다고 했다. 박상현 노인회장은 “아마 월곡리가 송악면에서 제일 영세한 마을일 것”이라며 “혼사사는 이들도 많고 남의 집에 얹혀 사는 사람들도 많다”고 말했다.
“정부에서 대책을 세워줘야 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 어디 가서 무얼해 먹고 살겠어. 무조건 나가라고 하면 다 길거리에서 죽을 판이여.”
박상현 노인회장 옆에 앉아 있던 이기봉(83)씨가 거들었다.
이기봉씨는 “오손도손 살고 있는 마을사람들이 한데 모여 살수 있는 집단 거주촌이라도 만들어 줘야 한다”며 “바듯바듯 살고 있는 늙은이들보고 무조건 나가라고 한다면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꽃다운 열여덟살에 월곡리로 시집왔다는 이정하(78)씨. 60여년을 월곡리에서 살며 아들 다섯과 딸 셋을 키웠다.
“마을을 뚝 떠다가 다른 곳에 놓아 주면 좋것어. 돈도 없어서 내쫓기면 어디로 가서 살아야 하는지 것정이여.”
이씨는 “이땅에서 죽어나가야 하는디”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전진례(73)는 혼자 된지 4년이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본인의 집이 아니라고 한다.
“자식들이 있지만 같이 누가 나이먹은 부모하고 살고 싶어 하겠냐”며 “혼자 나가서 살아야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문신자(69)씨는 혼자된지 오래됐다. 혼자 5남매를 가르치며 이제 가진 것도 하나 없는 신세가 됐다고 말했다. 문씨도 현재 살고 있는 집이 남의 것이라고 했다. 그나마 자손들이 생활비를 보태줘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간간히 동네일이나 아파트 같은데서 청소라도 하면서 살았는데 이제는 나이먹어서 일거리도 없다는 문씨. 문씨도 마을 사람들처럼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며 걱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