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보다 응모작이 대폭 늘어났다. <심훈문학상>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높아지고 있다는 반증일 터이다. 민족사의 수난기에 진정한 문학이 가야할 길을 보여주었던 심훈선생의 작가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이들로서는 반갑기 그지없는 일이다.
중편소설은 단편이나 장편과 다른 능력을 요구하는 장르다. 중편소설의 창작이 어려우면서도 묘미가 있는 것은 단편과 장편이 지닌 장점을 동시에 견지하는 소설 장르의 꽃이기 때문이다. 사회와 인생에 대한 식견이 아무리 폭넓다 해도 그것을 압축하는 문장과 구성 미학을 결여하면 중편은 성공할 수 없다. 중편은 단편작가들에게 요구되는 미학적 긴장과 장편작가들에게 요구되는 인문학적 소양을 동시에 요구한다.
이런 중편소설의 장르적 특성은 심훈선생의 문학적 생애가 보여주는 미덕과 일치한다.
중편소설에 대한 특별한 애정과 관심을 기울여온 우리 심사위원들은 <심훈문학상>이 작가다운 작가의 기개를 확인시켜주기를 기대하면서 투고된 작품들을 꼼꼼히 읽었다.
투고작 중에서 아홉 편을 먼저 골라서 집중적인 검토를 했는데 모두가 일장일단을 가지고 있어서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빈집>은 안정된 문장력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상담치료사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가족과 주변의 이야기도 짜임새가 있었다. <허물 벗는 여자>는 애완용 뱀을 키우는 주인공을 통해 인간과 뱀을 차분하게 은유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리자벨라를 위하여>는 작중인물들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 세 작품 모두 작금에 기성작가들이 단편에서 빈번하게 다루어온 이야기의 문법과 너무 닮아 있었다. 다른 깊이와 신인다운 패기를 찾기 어려웠다. 중편소설의 본령에 육박하기 위해서 갖추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기를 기대한다.
<황학동 사람들>은 청계천 복원을 계기로 역사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며 개발의 이름아래 버려지고 지워진 서민들의 삶을 형상화하려는 야심을 발휘하고 있다. 덮고 걷어내는 공간을 통해 시간을 환기시키는 힘이 돋보였지만 서사가 너무 나열에 그치는 것이 결정적인 한계였다.
<공포의 부대>는 군대라는 집단을 통해 인간의 야수성을 밀도 있게 형상화하는 힘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 이야기를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 동시대인들의 문제와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부족했다. <방화선>은 사법시험에 번번히 실패하고 뒤늦게 공익요원이 된 젊은이가 목격하는 삶의 형식들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인물들의 성격을 개성화하는 능력이 풋풋한 이야기를 더욱 돋보이게 만드는 작품이었지만 빈번히 노출되는 설익은 표현과 감정들이 눈에 거슬렸다.
<이제 누굴 기다릴까>는 박정희라는 동명이인의 두 사람을 매개로 현실과 역사를 조망하는 예사롭지 않은 안목을 보여주었다. 아버지와 화자 세대를 관통하고 있는, 다르면서도 같은 문제적 심리는 영웅에 대한 갈망이다. 그러나 그것을 드러내는 방법이 지나치게 평이했다.
<푸른 나무 아래 묻다>는 투고작 중에 가장 낯선 소설이었다. 조폭 두목으로부터 자신을 배신한 여자를 살해하라는 제안(?)을 받은 어린 조폭이 묵호에서 여자를 만나면서 펼치는 속도감 넘치는 드라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소설로는 낯설지만 영화에서는 너무 익숙한 서사다.
최종적으로 우리의 손에 남은 작품은 손수경씨의 <피로>였다. 정직하게 살아온 한 청년이 취업을 위해 편법을 선택하면서 지불하게 되는 대가를 구체적이고 설득력 있게 펼쳐 보이는 작품이다. 격심한 취업난 속에서 가산점을 얻어 임용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국가유공자’의 양자로 입적한 그를 협박하는 브로커보다 그의 내면을 괴롭히는 존재는 자신을 위해 평생을 바친 어머니다. 협박과 사랑, 이 둘 다 집요하다. 그 둘은 반대이지만 숨을 막히게 만들기는 마찬가지다. 부모의 과잉된 사랑 속에서 성장하여 연대감 없는 세상에 던져진 우리시대 젊은이의 표상이 슬프다. 우리는 이 작품을 최종 당선작으로 할 것인지를 놓고 상당히 망설였다. 많은 미덕들에도 불구하고 일부 인물들이 너무 상투적으로 그려진 것이 마음에 걸렸다. 특히 유진이 그랬다. 다소 거친 마무리와 라식시술에 관한 디테일도 우리를 망설이게 만들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작품이 노출하고 있는 몇 가지 문제보다 이 작가의 가능성에 투표하기로 했다. 당선자의 문운을 빈다. 올해 영광을 얻지 못한 투고자들의 분투 역시 기대한다.
< 심사위원 >
남정현(한국작가회의 고문)
방현석(소설가,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