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회 심훈문학상 심사평
과거의 어두움과 결별하려는 한 인간의 움직임 추적한 역작
소설가 남정현 / 문학평론가 김병걸
선자에게 넘어온 열 일곱편의 작품을 차근차근 읽으면서 우리는 새삼 소설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했다. 역시 좋은 문학작품이 존재하는 한 그 어느 시대든 인간이 완전히 절망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그만큼 이번 응모작품들 중엔 선자로서 마음 든든한 느낌이 들어 자랑하고 싶은 작품이 많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김외숙의 '끈', 박범서의 '헌화가', 박선자의 '노망소', 김병로의 '바벨탑의 종소리 1999', 소연의 '여우비' 등은 선자의 깊은 관심의 대상이었다.
소설 좥끈좦은 가슴 속 깊은 그 오지에 묻어있는 감정의 흔적까지 꼭꼭 집어내는 듯한 그 섬세한 심리묘사가 일품이란 점에서, '헌화가'는 저속한 작품들이 베스트셀러의 대열에서 우쭐대는 현실을 해학적인 기법으로 문제시한 내용이 신선하다는 점에서, 그리고 '노망소'는 농촌에서 일어나는 잔잔한 사건들을 구수하고 정감어린 언어로 일종의 미담처럼 미소짓게 그려낸 솜씨가 범상치 않다는 점에서, '여우비'는 순결성을 추구하는 작자의 태도에 호감이 간다는 점에서, 그리고 '바벨탑의 종소리 1999'는 거짓과 속임수가 주름잡는 우리시대의 피해자인 한 인간이 파멸해가는 과정을 세련된 문체를 구사하여 전통적인 소설기법으로 안정감있게 끌고 갔다는 점에서 선자의 시선을 끌었다.
여기에 열거한 여러 편의 작품들은 다 그만그만한 가치가 있다. 하지만 우리는 당선작으로 한 편만을 뽑아야 한다는 정해진 룰에 따라서 고심 끝에 '끈'과 '바벨탑의 종소리 1999'이 두편을 집어들고 최종적인 저울질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장단점이 다 있고 무게 또한 막상막하라 저울대는 한동안 수평선을 이루고 있었는데 우리는 결국 애석하지만 좥끈좦을 뒤로 미루자는 데 의견을 같이 했다.
가족간의 인간관계에서 실타래처럼 얽힌 감정의 가닥들을 박진감 있는 필치로 침착하게 풀어나간 수법은 탁월한데 어딘가 문학작품으로서의 윤기(潤氣)가 좀 부족한 것 같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윤기란 한 작가로서 사회와 인생에 대한 고뇌의 그 폭과 깊이를 뜻한다고 봐도 좋다. 그러니까 자연히 당선작은 '바벨탑의 종소리 1999'로 정해질 수밖에 없었다.
진실이 거세된 어두운 시대의 산물인 한 인간의 어두운 과거를 끊임없이 자책하며 그 어두움과 결별하려는 움직임을 잘 닦여진 문체로 진지하게 추적해간 작자의 역량은 여러가지 면에서 신뢰감을 준다. 그러나 꿈의 표현이나 형의 마지막 말 등 몇몇 장면은 다분히 작자의 의도를 보강하려는 작위적인 인상이 짙다. 소설이란 어차피 작위적인 소산이긴 하지만 그러나 되도록 작위적인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 소설에 있어서의 소위 그 기교의 중요한 한 부분이란 점을 거듭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계속 정진하여 한 작가로서 대성하기 바란다.
심사위원 소개
소설가 남정현
◇1933년 충남 서산 출생
◇1958년 에 소설 '고구역', '굴뚝 밑의 유산'이 추천돼
문단에 나옴
◇1965년 3월호에 발표된 소설
'분지' 반공법에 저촉된다하여 구속재판
1967년 '분지' 선고유예판결을 받음
◇1974년 3월 긴급조치 1호, 4호 위반구속
10월 긴급조치. 해제되어 석방됨
◇주요창작집으로 '너는 뭐냐', '굴뚝 밑의 유산', '준이와의 3개월',
'분지', '허허 선생 옷 벗을라', '사랑하는 소리'(장편) 등이 있음
문학평론가 김병걸
◇1924년 함남 이원 출생
◇서울 산업대학교 교수로 재직중 1974년 민주화운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해직, 1984년 복직이 허용됐지만 거부
◇주간 발행인 역임, 현 고문
◇저서 '리얼리즘 문학론',
'실천시대의 문학', '문학과 역사와 인간' '민중문학과 민족현실',
'실패한 인생, 실패한 문학' 등이 있음
◇공동편저 '일문학 작품선집'1·2권,
'민중, 노동, 그리고 문학', '민족·민중좦, 좥역사·현실' 등이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