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미야기 현, 이와테 현, 후쿠시마 현(원전 6호기 소재), 40만 명 이상의 이재민과 사망 약 4만 명, 건물 피해 4만6천여채, 경제손실 약 3천억 달러로 추정되며 경제성장률을 -2% 끌어 내리는 천재지변이 있었습니다.

한국은 역사적으로 임진왜란과 식민통치 등 일본으로부터 엄청난 수탈과 고통을 당한 나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 보도된 바와 같이 가장 먼저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가장 가슴 아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하다못해 반일 감정이 가장 많은 정신대로 끌려갔던 할머니까지 돕겠다고 나섰으니 말입니다. 가장 가까운 이웃으로 접하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 민족이 정이 많은 민족이기 때문일 겁니다. 또한 헤어짐은 다시 만남을 기약하듯이 불행한 기억은 잊어버리고 새로운 긍정적 미래를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의 식민사관에 의해 역사를 바로보지 못하고 왜곡되게 가르쳤으며 그렇게 배우고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너무 많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1970년 이후 많은 새로운 신진사학자들의 노력에 의해 많이 시정되어가고 있습니다. 또한 교육계에서도 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역사교육에 좋은 전기를 마련하고 있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한국의 고대 언어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연구 발표에 의하면 한반도의 고대 언어가(삼국시대 및 그 이전) 가장 많이 잘 보존되어 있는 나라가 한반도가 아니라 오히려 일본이라고 합니다. 언어학 체계가 똑같은 나라는 일본과 한국입니다. 중국의 문물이 수천 년 동안 한반도에 영향을 미쳤지만 언어의 체계는 변동시키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일본과 한국은 같습니다. 다시 말해서 민족의 근원과 뿌리가 같다는 것입니다. 당나라의 개입으로 백제가 멸망하자 3년 후 수복전쟁을 하게 됩니다. 이를 백강 전투라고 하는데(오늘날 부안 앞바다) 이때 일본천왕이 교토에서 오사카로 임시 행궁을 마련하고 진두지휘를 합니다, 수복 전쟁에 필요한 인원, 각종 무기와 보급 물자를(군함 1천척 조성, 육해군 2만7000명 징집 조련) 준비해 전쟁하는 일로 당시 일본 국력으로 추산한다면 전 국력을 다한 역사적 사실입니다.

더구나 백제가 전쟁 중도 아니요, 완전히 망한 3년 후의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의 일상에서 상식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납득이 가지 않는 일입니다.

그것은 백제와 일본이 한 나라(같은)이었거나 피를 나눈 형제국이었음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일본이 고대사에서 백제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것을 일본에서 인정을 하고 있지만 일본 고대 천황의 무덤을 발굴하지 않고 백제와 일본 간의 내밀한 역사를 가르치거나 공개하지 않는 것은 오늘날 일본으로서는 실로 두렵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참사를 겪는 계기로 인해 일본과 한국이 보다 진실한 신뢰를 갖게 되어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진심을 다하게 된다면 역사가 증명하듯 점차 좋은 관계로 발전되는 새로운 전기가 되리라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