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개충

우이독경(牛耳讀經)

푸른 신록의 계절, 풍요와 점잖기로 소문난 우리고장 당진땅에도 선거잔치로 한달여 동안 떠들썩 했었다. 나 또한 우연찮게도 도지사 출마하는 분의 연설문을 써준 것이 인연이 되어 하던 출판업무를 팽개치고 선거판 수렁에 깊숙이 빠져들어 봤다. 명색은 도지사후보의 연설원이었지만 정작 고향선배 모 군수후보의 유세차량을 이끌고 20여년만에 마이크를 다시 잡아 군내 12개 읍면을 휩쓸고 다니다시피했다.

돌아다니는 곳마다 산천초목이 울창했고 논밭의 풍성한 작물을 바라보노라니 새삼 고향땅이 어머니 품속처럼 따뜻하게 느껴졌고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특히 채전밭에 심겨진 풋고추도 싱그러웠고, 감자밭의 자주꽃과 흰꽃도 보기 좋았으며, 넓게 퍼진 담배잎은 그 무엇보다 인정많은 이웃집 아저씨의 구수한 입담처럼 느껴졌다.

아마 선거일이 코앞에 닥친 어느 날이었다. 아침부터 내리던 장대비는 고대면을 거쳐 석문, 삼봉에 이르는 동안 가랑비로 변했고 우리 일행은 석문 유세를 마치고 고대로 향하던 중 왼편 산자락을 중심으로 넉히 백여호쯤 가늠되는 마을이 내 시야에 들어왔다. 이왕 내친김에 일정을 바꾸어 그 마을로 들어갔다.

마을중앙에는 회관이 있었고 우리 일행은 유세차량의 고성능 엠프를 밀집되어 있는 집들을 향하여 세우게 했다. 유세순서는 간단했다. 내가 바람잡이 노릇으로 이 지역을 위해 가장 많이 헌신하고 봉사할 적임자는 모 후보라며 한껏 추켜세우기도 하고, 그에게 표를 몰아주지 않으면 일생일대의 가장 크나큰 후회를 할 것이라며 목청껏 소리지른 후 후보부인을 소개하며 그에게 마이크를 넘겨주면 내 몫은 끝나는 일이었다.

그날 그 순간에도 그랬다. 멋진 폼으로 유세차량에 올라 마이크를 시험한 후 마을을 살펴보니 바람 한점 없는 고요함 가운데 개울음도 들리지 않고 집집마다 열린 대문사이로 침묵의 섬 그 자체였다. 뿐만 아니라 멀리 밭자락 끝에는 푸른바다가 넘실대고 있었다. 어쨌든 십여분 유세를 하는 동안 함께 동행한 선거운동원들은 저마다 바쁘게 가가호호 방문하여 선거유인물도 나눠주고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내 순서를 마치고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유세차량과 제일 근접한 집으로 찾아들었다. 아뿔사 그런데 웬일일까?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마루밑에서 누렁이 한 놈이 입을 쩍 벌려 하품하면서 어슬렁 나오는게 아닌가. 하도 이상하여 옆집을 가봤다. 그런데 마침 그 집에는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 한 분이 쪽마루에 걸터앉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마침 선거운동원 몇몇이 다가왔다. 온 마을을 다 뒤져봐도 상황은 같더란다. 사연을 물어보니 마침 조개잡이 철이기 때문에 마을전체가 공동으로 아침일찍 바다로 나가고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온단다. 나는 둔기로 한방 맞은 기분이었다. 이 바쁜 황금같은 시간을 허비하다니... 못내 아쉬운 심정으로 되돌아 나오는데 어디서 둔탁한 인기척이 들려왔다. 하여 살펴보니 그곳은 소 키우는 축사였다. 가까이 가보니 소 30여 마리가 고개를 반듯 세우고 고성능 엠프에서 흘러나오는 후보부인의 간절한 절규의 높낮이에 따라 귀를 쫑긋대며 소리나는 방향으로 눈을 고정시키고 있었다.

나 또한 한참을 그렇게 그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선거운동원들은 내가 무슨 사람들을 모아놓고 좌담회라도 벌이는가 하여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주인 대신 소가 열심히 들어줬으니 저녁에 주인이 돌아오면 얘기해 주겠지’하는 심정으로 위안을 삼아야 했다. 그날따라 후보부인의 유세는 왜그리 긴지.

마침 유세를 마치고 후보부인이 우리곁으로 다가왔다.

“인사들릴려고...”

“저기 소한테 빨리 가서 인사하고 오시오!”

우리는 박장대소하며 차량에 올라 시동을 걸었다. 그랬더니 웬걸. 갑자기 소들이 합창으로 ‘음메궊?求 게 아닌가.

자! 잔치는 끝났다. 이제 흐트러진 군심을 한데 모으고 살기좋은 내고장, 살고 싶은 우리당진, 살맛나는 고향땅을 위해 정진할 때이다.

패기 왕성한 용사들이여!

이제 우리는 누구보다 자신을 생각하고

젊음을 사랑하고

내 고장을 깊이 사랑할 때이다.

뜨거운 열정과 사랑,

젊음의 고뇌와 신념에 축복있으라.

우리들 있음으로 내고장은 하나되어 번영하리

영광있으라.

좋은세상출판사 대표

고대면 항곡리 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