故 최건묵씨(전 우강면 새마을회장)

명예만 남기고 집한칸없이 한줌 흙이 된 새마을일꾼

3월 26일 예산군 고덕면 호음리에 있는 어느 묘역앞에서는 짧은 일생을 지역봉사에 헌신해온 한 새마을일꾼에 대한 조촐한 추모식이 열렸다. 이날은 우강면 강문리 지도자로 시작해 넉넉지 않은 형편 속에서도 15년동안 묵묵히 마을과 지역일에 헌신해 온 故 최건묵씨가 불치병으로 세상을 떠난지 1백일째 되던 날이었다.

생전에 고인과 함께 활동했던 동료들과 후배들은 이날 고인의 묘역앞에 조그만한 추모비를 세우고 53년이라는 짧은 일생을 사심없이 살다가 간 그의 뜻을 기렸다. 그러나 추모식에 참석한 이들은 남을 위해 살아온 고인의 말년이 너무도 초라했기에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다.

고인은 43년 우강면 강문리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78년부터 91년까지 강문리 새마을지도자, 새마을 우강면협의회장을 맡아 지역일에 열성을 다해왔다. 유순한 성품이면서도 맺고 끊는 것이 확실해 각종 봉사사업을 무리없이 추진해 왔다고 주위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6년간이나 면회장을 맡아오다가 지도자 생활을 마친 고인에겐 그러나 명예이외에 남겨진 게 없었다. 2천평 남짓한 손바닥만한 농사채로 살림을 꾸려가기가 어렵자 고향인 강문리를 떠나 창리에 있는 2백평짜리 도정공장을 임대해 운영하기 시작했다. 먼지나는 도정공장을 운영하길 4년. 그러나 가까스로 형편이 펴기 시작한 95년 어느날 그는 폐암이라는 사망선고를 받아야 했다.

생업이었던 도정공장도 주인에게 도로 내주어야 했고 가세는 기울대로 기울었다. 고향인 강문리에도 창리에도 사그러져 가는 병든 몸을 편히 뉠만한 집한채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안타까운 사정을 알게 된 우강면의 지도자들이 힘을 모아 창리의 빈집을 수리해 여생을 보낼 수 있도록 하려했으나 때는 이미 늦고 말았다. 96년 12월 16일 그는 1년간의 외롭고도 긴 투병생활을 끝으로 예산의 한 병원에서 부인과 두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조용히 숨을 거두었다. 향년 53세였다.

아무런 댓가를 바라지 않고 30, 40대의 젊음을 새마을과 함께해온 고인은 새마을장으로 많은 동료들이 함께한 가운데 호음리 선영에 묻혔다.

백일탈상을 맞아 추모비 건립식에 참석했던 임복만(전 새마을우강면회장)씨는 “고인은 남보다 일찍 일어나 내집보다 주위를 먼저 둘러보고 몸으로 봉사하는 새마을지도자의 본모습을 보여왔다”며 “평생 좋은 일만 해왔던 고인의 말년이 이처럼 초라해 안타까운 마음 금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