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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우현선의 포구’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25건
연도
2021년

25건 · '우현선의 포구' · 2021년 · 최근 기사부터1 / 2쪽

  1. 2021.12.27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합덕의 포구 구양도 다리 밑에서 곤쟁이 잡던 어민들

    …한국전쟁도 구양도에서 겪었다.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은 어린 시절 구양도포구로 배가 드나들고 갯벌에 나문쟁이가 지천이었던 풍경이다. “그전엔 여기에 조수가 들락날락하니까 많은 배가 다녔죠. 저 들판에 나문재라는 게 많이 났었고. 황발이라고 발 커다란 …

    당진시대
  2. 2021.12.18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삽교천 통해 조세미 경창에 실어나르던 곳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합덕의 포구 1

    …)까지 인천행 여객선과 새우젓 등을 실은 어선이 오갔으나, 어업 중심의 포구를 이룰 만큼 어선과 어민들은 많지 않았던 것으로 조사됐다. 그마저도 1970년대 삽교천방조제의 건설과 교통의 발달로 바다와 합덕의 나루터를 오가는 배들은 사라졌다. 합덕읍 소…

  3. 2021.08.0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소산포·함박포·화포새우젓·소금 실은 배 정박했던 작은 포구들

    …러한 이유로 송산면 내륙에는 새우젓이나 소금 실은 배들이 정박했던 작은 포구들이 다수 존재했다. 과거에 있었던 포구들은 여전히 마을의 옛 지명으로 남아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으로 그 흔적이 전해내려오고 있다. 하지만 송산면의 무수리, 삼월리, 송석리 일…

    당진시대
  4. 2021.07.27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시루지 3 두봉산에서 채굴한 ‘백토’ 운반에 선박 이용

    …진 시루지에서는 주로 살매기와 맨손어업이 이뤄졌을 뿐, 배들이 정박하는 포구의 역할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루지와 인접한 두봉산에 풍진산업 당진광업소가 들어서면서 이곳에서 채취한 광석을 운반하는 선박이 정박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광업소…

    당진시대
  5. 2021.07.1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시루지에서 참봉고사 지내[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시루지 2

    시루지에는 살매기를 하는 이들이 물 때를 기다리기 위해 만든 임시초소인 ‘살막’도 있었다. 해변가에 움막 형태로 지은 살막은 저마다 살 맨 곳이 잘 내다보이는 곳에 지었다. 살을 맨 사람들은 참봉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떡이며 음식을 가져다 놓고 제를 …

    당진시대
  6. 2021.07.12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시루지 1 전통어로 사둘질…낙지잡이도 번성

    시루지에서는 살 말고도 조립식 휴대어망으로 고기를 잡는 사둘질도 이뤄졌다. 물이 쓰면 낙지도 많이 잡혔다. “시루지 앞바다에 뻘이 길게 빠지면 낙지가 무지하게 잡았어요. 거기 가면 암만 못 잡아도 50~60마리, 많이 잡으면 150마리씩 잡았다고. ‘…

    당진시대
  7. 2021.07.0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송산 섬돌매파인스톤 골프장 자리에 있던 섬돌매포구

    모래해변이 길게 펼쳐진 시루지는 지역주민들의 옛 추억이 가득한 소풍장소였다. 날씨가 온화할 때 신루, 즉 신기루가 잘 나타났다 하여 신루지 마을로 불리다 시루지 마을이 되었다고 한다. 두봉산에 오르면 용이 하늘로 올라가는 듯, 물안개가 번지는 풍경이 …

    당진시대
  8. 2021.06.19 · 정책·행정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송산면 무수리 도랑운포구무수리 전주 이씨 선주들이 정박했던 포구

    송산면 무수리 도랑운포구는 무수리에 거주하던 선주들이 중선을 정박했던 포구다. 선주들은 무수리에 집성촌을 이루고 사는 전주 이씨 집안 사람들로 이웅렬, 이봉렬, 이재인이었다. 이들의 후손인 이재극 씨와 함께 도랑운포구에 대한 흔적을 찾아가 보았다. 당…

    당진시대
  9. 2021.06.0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북창포(굼벙골) 3장승 세우고 마을의 안녕 빌던 당제

    …김성권) 당산리 일대에서 활발히 이뤄졌던 당제를 비롯한 민간신앙은 주로 포구를 드나드는 뱃사람들의 안위와 마을의 안녕을 위해 오래도록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바닷길이 막히면서 포구의 규모가 줄어들고 배들의 왕래가 끊기면서 점차적으로 당제와 같은 …

    당진시대
  10. 2021.05.28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북창포(굼벙골) 1 송산면 당산리에 있던 ‘송리북창’

    송산면 당산리에 있던 옛 면천군의 북창인 송리북창은 성구미포구, 오섬포구 등과 함께 송산면의 주요 포구였다. 가야산에서 발원하는 역천이 면 경계를 따라 북류해 남양만으로 흘러들어가는 물길의 안쪽, 깊은 내륙 쪽에 북창포구가 존재했다. 옛 송리북창은 현…

    당진시대
  11. 2021.05.1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서원포(중선골) 3신흥개발 방조제 건설하며 사라진 서원포

    …송산방조제가 막히면 완전히 바닷물 유입이 끊기게 되었다. 명산리에는 서원포구 말고도 옛 나루터였을 것으로 추측되는 ‘중선골’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이재실 전 이장의 안내를 받아 찾아간 중선골은 현재는 영락없는 산골짜기다. “예전에 여기에 다랭이논이…

    당진시대
  12. 2021.05.11 · 환경·안전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서원포구(중선골) 2바닷물이 서원천 따라 가학리까지 들어와

    …마을인 댓바지에 외나무다리식당이 위치해 있다. 선머리와 댓바지가 옛 서원포구의 자리로 주민들 기억에 의하면 이곳으로 1960년대까지 배가 드나들었다. “바닷물이 가학리 다리 밑까지 올라갔었는데 골이 좁아서 배는 여기 서원포까지만 들어왔어. 이 근처가 …

    당진시대
  13. 2021.05.0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서원포구(중선골) 1새우젓 장사꾼 오가던 서원천 외나무다리

    서원포구는 송산면 명산리에 1960년 중반까지 존재했던 것으로 알려진 작은 포구다. 주민들의 구술에 의하면 현재 송산방조제에서 2km 가량 떨어진 상류에 일명 신흥개발방조제가 건설되면서 바닷길이 끊긴 것으로 보인다. 인근 주민들은 명산리의 서원포구를 …

    당진시대
  14. 2021.04.2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가곡리와 동곡리의 나루터 3개구덕·해변말 등 바닷가 마을 지명 남아

    …다. 가곡리의 경우 신영개, 칠성개(칠성포)가 갯가에 있던 마을이었으나 포구로서 역할을 할 만큼 배들이 정박하고 어업생활을 하진 않았다는 것이 구술자들의 중론이다. 가곡초등학교 아랫동네를 칠성개라 불렀는데, 염전이 있었다. 하지만 문헌에 기록된 칠성각…

    당진시대
  15. 2021.04.19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가곡리와 동곡리의 나루터 2 “썰물 때면 바지 걷고 걸어 다녔지”

    …곡리 은골과 쌍천동 송산면 동곡리에 남은 옛 지명 중 ‘은포’라 불리는 포구를 기억하는 이는 만나지 못했다. 다만 현재 송산방조제를 막은 지점에 은골이란 마을이 있었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안평일 씨의 집은 앞마당에서 낚시대를 던지면 바다에 닿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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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2021.04.1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7 오섬의 별미인 맛조개호박볶음과 소금에 절인 꽃게

    썰물 때면 오섬포구 앞 갯고랑에도 펄이 드러났다. 오섬 앞 펄에는 특히 맛조개가 많이 났다. 오섬 주민들은 ‘써개라’는 맛 잡는 도구로 맛을 캤다. 더러는 펄에 커다란 둥지처럼 땅을 파고 들어앉아 맛을 잡기도 했단다. 그러다 물 들어오는 때를 놓치면 …

    당진시대
  17. 2021.04.1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가곡리와 동곡리의 나루터 1가동염전과 소금 실어 나르던 두멍개

    …다가 막히기 전 두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바다에 기대어 살아왔다. 성구미포구가 대표적인 포구로 이름이 남았지만, 이전에는 가곡리와 동곡리 해안가 곳곳에 나루터가 존재했다. 옛 지명을 토대로 주민들의 기억을 더듬어 봤다. 1919년과 현재의 송산면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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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2021.03.29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4오섬 여자들의 부업 ‘그물뜨기’

    오섬포구가 번성했던 당시 주민들 중 대다수의 남성들은 어업에 종사했다. 더러 농사를 짓는 이도 있었고, 염전에서 염부로 일하거나 어선이나 증기선이 들어올 때면 하역일에 종사하기도 했다. 선원들의 아내들은 남편들이 가져온 생선을 다라에 이고 나가 판매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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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2021.03.22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4마을의 역사 간직한 소금창고

    …염전이 있었다. 오섬 주민들 중 여럿이 영진염전에서 염부로 일했다. 오섬포구 상류, 영진염전 뒤로 풍선이 드나들며 소금을 운반해 갔다. 염부들은 품값으로 소금을 받아 다른 곡식들로 물물교환했다는 것이 구술자들의 설명이다. 한편 1960년대에는 당시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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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021.03.08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우현선의 포구 이야기] 오섬포구 3당진의 관문이었던 ‘오섬포구’

    …나 음식점, 상점 등 상권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대도시의 신문물도 오섬포구를 통해 당진으로 들어왔다. “그때는 미니스커트 입고 당진을 들어오는 관문이 오섬이었어요. 아이들이 놀다가도 배 들어온다고 하면 쭉 서서 구경하고 그랬어요. 여객선에는 사람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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