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0 · 정책·행정 · 당진시대
[시민의창] 김남석의 면천역사산책 2
…골정지가 가장 높은 지대임을 고려하면, 매우 적절하고 타당한 이름이다. 박지원 군수가 개축한 골정지와 건곤일초정 하지만, 골정지는 조선시대 후기 박지원 군수를 만나기 전까지 유명무실한 존재였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1797년(정…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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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건 · '연암 박지원' · 정책·행정 · 최근 기사부터1 / 1쪽
2026.07.10 · 정책·행정 · 당진시대
…골정지가 가장 높은 지대임을 고려하면, 매우 적절하고 타당한 이름이다. 박지원 군수가 개축한 골정지와 건곤일초정 하지만, 골정지는 조선시대 후기 박지원 군수를 만나기 전까지 유명무실한 존재였다. 연암 박지원(朴趾源, 1737~1805)은 1797년(정…
2025.09.27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나온다고 대답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다. 이런 일도 있었다. 면천군수 연암 박지원은 처음에 이 정자를 ‘취옹희우우사정’이라고 정했는데, 왜 ‘건곤일초정’이냐는 질문을 받았다. 이렇다 할 답을 내놓을 수 없어 더 답답할 뿐이었다. 면천군수 박지원은 1…
2024.10.18 · 정책·행정 · 한수미 기자
당진시립도서관(관장 구본휘)이 면천읍성 작은도서관 내부에 연암 박지원의 실용적이고 개혁적인 사상, 철학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연암 박지원의 서재’ 코너를 마련했다. 연암 박지원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이자 문장가로 ‘열하일기’와 ‘양반전’, ‘허생전’…
2024.04.12 · 정책·행정 · 한수미 기자
…특징이다. 최근에는 면천의 골정지가 인기를 끌고 있다. 면천의 골정지는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재직하던 동안 지은 정자(건곤일초정)가 있는 연못이다. 연못 주변에 벚꽃이 만발하는데다가 밤에는 조명이 켜져 온종일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벚꽃이 만개하는…
2021.10.30 · 정책·행정 · 박경미
…쪽)에 위치한 저수지다. 축조 시기는 고려 말로 추정되며 18세기 후반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재직할 때 대대적인 준설작업을 전개했다. 그 후 일제강점기와 해방기를 거쳐 지난 2006년 초가정자(건곤일초정)와 함께 복원했다. 한편 현재까지 당진시 향…
2017.09.29 · 정책·행정 · 김예나
나는 반남 박씨, 연암 박지원 선생이 나의 고조할아버지다. 고조할아버지가 면천에 오면서 5대째 당진에 살고 있다. 세 살 때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1950년 셋째 작은아버지의 양자로 들어갔다. 작은아버지와 어머니가 나에게 무척 잘해주셨지만, 나는 하…
2017.06.02 · 정책·행정 · 당진시대
…하나 근거를 찾아보면 튼실하고 찰지다. 면천을 오갔던 심수경, 김종수, 박지원, 김윤식 등 조선의 유수한 명사들의 살아있는 에피소드가 면천관아의 복원과 궁합이 맞는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본다. 한 가지만 예로 들어본다.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재직한…
2017.03.24 · 정책·행정 · 임아연
… 게다가 면천면의 경우 조선시대에는 ‘면천군’이었을 정도로 중심지였다.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이곳에 기거했고, 그의 흔적이 골정지와 건곤일초정으로 남아 있다. 면천읍성을 중심으로 몽산성, 영탑사, 두견주, 면천은행나무, 승전목 등 역사문화적 자원들…
2016.06.05 · 정책·행정 · 임아연
…조사를 시작으로 지난 2004년 서벽과 치성 60m 구간을 정비했으며, 연암 박지원이 면천군수 재직할 당시 세운 것으로 알려진 건곤일초정도 2010년에 복원했다. 또한 2012년에는 면천읍성 남벽 135m 구간과 남문에 대한 복원사업에 착수해 2년여에…
2015.07.24 · 정책·행정 · 이영숙
…천향교 가는 길에 정자 한 채가 들어서 있는 큰 연못을 만날 수 있다. 연암 박지원 선생이 면천군수 시절 조성한 연못 골정지다. 골정지 가운데에는 조선정조 24년 경신년에 면천군수 연암 박지원이 세웠다는 ‘건곤일초정’이라는 정자를 만날 수 있다. 골정…
2011.07.24 · 정책·행정 · 당진시대
…은 우리가 새겨 놓은 오랜 발자국이다. 서울서 태어나 황해도 땅에 살던 연암 박지원 선생도 그 시대의 떠돌이였다. 연행(燕行)은 압축적인 떠돌이 길이었다. 이 길에서 우리 문학사에 가장 아름다운 여행기가 태어났다. 김정희 선생도 혹독한 떠돌이 인생이었…
2009.09.28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목민심서(牧民心書)’를 비롯하여 500여 권의 방대한 저술을 남겼다.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세도정치를 펴는 홍국영(洪國榮)의 견제를 피해 연암골에 은둔했으며, 홍국영이 실각하자 삼종형인 박명원을 따라 북경을 거쳐 열하에 다녀온 후 ‘열하일기(熱河日…
2006.06.19 · 정책·행정 · 당진시대
조선시대 실학자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당시 면천군수)이 세운 ‘건곤일초정’ 복원이 완료됐다. ‘건곤일초정’은 박지원이 면천군수로 있을 때 면천군 백성들의 고통 받는 삶을 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과농소초와 한민명전의 등 개혁정책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였…
2004.12.06 · 정책·행정 · 당진시대
…만 규모는 작아 주위 319m, 수심 3.3m이다. 당시 북학을 주창한 박지원의 아들 박종채가 쓴 아버지의 전기 「과정록(過庭錄)」에는 면천향교와 못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 비록 향교 앞에 사방 100보쯤 되는 연못에 황폐해진 땅의 지력을 얻기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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