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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마을 역사’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19건
연도
2001년

19건 · '마을 역사' · 2001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1. 2001.12.31 · 문화·교육 · 당진시대

    겨울 당진의 빈 농가에서 홀로 견디는 이유

    … 그 고장을 찾지는 못하였으나 마치 그 영혼에 이끌리듯 어느 한적한 산골마을을 찾아가 150년 가까이 된 농가를 한 채 마련할 수가 있었다. 이렇게 해서 나는 백여년 만에 아버지에게 고향을 찾아드렸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틈틈이…

  2. 2001.12.31 · 정책·행정 · 김태숙

    2001년 10대 뉴스

    …호기는 물론 12호기까지 건설하는 것도 기정사실로 보면 된다”고 말해 지역사회의 정서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산업자원부와 당진화력이 5·6호기 건설을 위해 사업을 추진 중이고 한편에서는 환경연합을 필두로 한 시민단체가 5·6호기 증설을 반대하는 가운데…

    당진시대
  3. 2001.12.03 · 문화·교육 · 손성진

    고대면지 발간 기념식 가져

    …면사무소 회의실에서 이은홍 면장과 이기흥 군의원을 비롯한 기관장들과 각 마을이장, 지도자, 부녀회장 등 1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면지 발간 기념회를 가졌다. 기념식에서 이은홍 면장은 “고대면의 역사를 집대성한 이 한권의 책이 과거를 돌아보고 현재를 …

  4. 2001.11.26 · 지역사회 · 손성진

    순성 본1리 마을유래비 세워

    순성면 본1리(이장 박상일) 주민들이 마을의 역사를 새긴 유래비와 꽃탑을 세우고 지난 15일 제막식을 가졌다. 본1리를 지나는 지방도로변의 마을입구에 꽃탑과 함께 세워진 유래비는 ‘다시 찾고 싶은 마을 가화’라는 문구와 마을의 역사, 지명의 유래를 자…

  5. 2001.08.2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20년전 ‘왜목’ 표기 전에 긴세월 ‘왜메기’로 불린 곳

    …훨씬 적극적인 것이 되었다. “왜목”이라는 이름에 담긴 한가지 진실 왜목마을의 본래 이름은 ‘왜메기’이다. 이곳은 오랫동안 왜메기라고 그저 불리우기만 했었다. 이 왜메기를 ‘왜목’으로 처음 기록한 것은 1981년 가을, 공무를 처리하는 이곳 기관의 이…

  6. 2001.07.30 · 환경·안전 · 당진시대

    [투고]조상섭/행담도 유감

    … 얻어들었는지 그럴싸한 넋두리를 늘어놓았구나. 행담도의 ‘담(淡)’자는 역사적인 기록에 보면 ‘담(擔)’자로 표기 돼 있다. 물 가득할 淡이 아니고 짊어질 擔이다. 그러나 1920년대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淡자로 바꾸어 기록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

    당진시대
  7. 2001.07.16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오른손 하나로 여는 세상의 문 - 차덕분, 고성기씨

    …요즘 원형복원이 한창이다. 아름다운 성당이 올려다 보이는 합덕읍 합덕리 마을에서 고성기(48세)·차덕분(45세)씨 부부는 작은 의상실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 고은 의상실. 점포가 밀집한 상가도 아닌 곳에 한적하니 가정집처럼 생긴 의상실의 문을 열고 들…

  8. 2001.07.16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왜목마을의 주변 섬3]풍도(豊島)

    …. 출발한 지 한시간. 풍도는 녹음으로 덮인 채 고요하다. 섬은 수많은 역사를 지켜보며 오늘도 묵묵하다. 물빛은 쪽빛으로 수심을 말해주는데 깊고 깊은 바다밑 저 아래엔 1894년 7월23일 청·일전쟁에서 패전한 청나라 군인들의 잠든 영혼이 격침된 군함…

  9. 2001.07.02 · 지역사회 · 이명자

    대호지 적서리 마을 유래비 세워

    대호지면 적서리 마을회(이장 박종갑)가 우리마을 사랑운동 우수마을로 선정돼 받은 상사업비로 마을의 역사를 기록한 유래비를 세우고 지난 23일 제막식을 가졌다. 이 유래비에 따르면 적서리는 ‘노서하전’이라는 말에서 명칭이 유래됐는데 이는 산이 마치 늙은…

  10. 2001.06.18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왜목마을의 문화유산5]고란초(皐蘭草)

    …지금까지 고란사의 고란초는 사람들의 손에 의해 멸종위기에 놓여있지만 왜목마을엔 원시 이후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고 마을 사람들 중에서도 몇몇 사람만 알고있는 고란초 군락지가 있다. 수백포기씩 무리를 이루어 벼랑 전체의 여러 군데에 분포하여 우리나라에서…

  11. 2001.06.11 · 정책·행정 · 이명자

    [진단]김낙성 군수 경조사 참석 이대로 괜찮은가?

    …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40분 뒤 다시 군청으로 들어와 12개 읍·면 새마을 회장단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우리마을 사랑운동 연석회의에도 들러 인사말을 했다. 다음날 오전 김군수는 마을 이장단 50여명을 군청으로 초청해 간담회를 가졌고, 오후에는 우강 …

  12. 2001.06.04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왜목마을의 문화유산]앞바다의 독살(石防簾)

    우리나라에서 사람이 살았던 시대는 퍽 오래되었다고 하는데 기록으로 남긴 역사시대보다 문헌의 자료가 없는 선사시대가 훨씬 길었다고 한다. 구석기시대는 지금으로부터 40~60만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 시대의 유적들이 가끔 발견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13. 2001.05.28 · 지역사회 · 당진시대

    금주의 당진역사(唐津歷史)-5월 다섯째주(5월 27일~6월 2일)

    …망이 전무함을 긍측(矜惻)히 생각하여 금화 20원을 해동중(該洞中, 그 마을)에 영구히 기부하고 연연히 식리(殖利)하여 동민(洞民)의 극빈한 자로 하여금 파종작업(播種作業)을 하려하는 고로 동민 일동이 안씨의 자선권업(慈善勸業)함을 막불감복(莫不感服)…

  14. 2001.05.1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금주의 당진역사]5월 세째주(5월 13일~5월 19일)

    [기록으로 보는 우리 역사] 금주의 당진역사(唐津歷史) 5월 세째주(5월 13일~5월 19일) 15일 ◆당진읍 이소노씨 빈민 도와 충남 당진군 당진읍 읍내리 거주 이소노(李?魯)씨는 본래 유명한 독지가로 매양 흉년을 당하면 빈민구제를 하였던 바, 수년…

  15. 2001.05.07 · 지역사회 · 김태숙

    조선형 "왜목의 역사와 숨결 담긴 살아있는 개발되도록 하겠다"

    왜목의 역사와 숨결 담긴 살아있는 개발되도록 하겠다 조선형 왜목마을 관광단지유치 추진위원회 회장 “교로리 왜목마을에는 해뜨고 지는 아름다운 풍경 뿐 아니라 문화적으로 가치있는 자산들이 매우 많습니다. 그런데 이것들이 아직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고 …

  16. 2001.04.09 · 환경·안전 · 유종준

    당진화력 증설 반대 군민집회 열려

    …설 저지 범군민 투쟁위원회 결성대회 및 규탄대회가 지난 4일 석문면 왜목마을과 당진화력 앞에서 열렸다. 석문면 교로리 왜목에서 열린 투쟁위 결성대회에서 참석자들은 당진화력 5·6호기 증설 및 핵폐기장 건설 반대를 주장하며 한전의 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

  17. 2001.04.09 · 환경·안전 · 유종준

    당진화력 증설 반대 군민집회 열려

    …설 저지 범군민 투쟁위원회 결성대회 및 규탄대회가 지난 4일 석문면 왜목마을과 당진화력 앞에서 열렸다. 석문면 교로리 왜목에서 열린 투쟁위 결성대회에서 참석자들은 당진화력 5·6호기 증설 및 핵폐기장 건설 반대를 주장하며 한전의 계획이 철회될 때까지 …

  18. 2001.03.19 · 지역사회 · 유종준

    [국화도 현지르뽀]개발로 황폐화된 섬 주민들의 위험한 선택

    …22명은 화성군 지역경제과에 핵폐기물 처리장의 유치를 신청했다. 인근 지역사회에 매가톤급 충격을 던진 이 사건은 군 이미지와 주민여론을 우려한 화성군과 군의회의 유치 건의서 반려로 일단락되는 듯 했으나 산업자원부의 신청마감 4개월 연장 방침으로 또 다…

  19. 2001.02.02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전쟁의 폐허 위에서 재건 시범마을이었던 ‘신리’ - 이진규(합덕읍 신리)

    사진 속으로 추억 속으로 전쟁의 페허 위에서 재건 시범마을이었던 ‘신리’ 합덕읍 신리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었다. 광활한 평지에 자리한 ‘신리’는 평야 중심에 자리한 점과 부농들이 있는 관계로 한국전쟁 중 9.28 서울수복 때 일종의 거점이 되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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