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10.26 · 지역사회 · 우현선
[경로당을 가다 35]정미면 중심에 자리한 매방리 염솔경로당
…조제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마을 앞 갯벌에 나가 굴이며 바지락을 캤다. “우리 마을 사람 중에 갯벌에 안 나간 사람이 없었지. 농한기에는 모두 갯벌에 나가 낙지며 조개를 잡아다 먹었어. 우리 마을 앞까지도 바닷물이 들어왔었다고.” 바다가 막힌 뒤 갯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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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건 · '우리 학교' · 지역사회 · 2012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2012.10.26 · 지역사회 · 우현선
…조제가 건설되기 이전에는 마을 앞 갯벌에 나가 굴이며 바지락을 캤다. “우리 마을 사람 중에 갯벌에 안 나간 사람이 없었지. 농한기에는 모두 갯벌에 나가 낙지며 조개를 잡아다 먹었어. 우리 마을 앞까지도 바닷물이 들어왔었다고.” 바다가 막힌 뒤 갯벌은…
2012.10.19 · 지역사회 · 임아연
… 지어준 이름이 ‘재이랑’이라는 걸.”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자라느라 학교에 갈 여력도 없었다. 이따금씩 수수나 콩을 배급받아 먹었다. 먹고 살기 위해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도 했다. 12살 되던 해에 외삼촌이 살고 있는 순성면 광천리로 왔다. 청각장…
2012.09.07 · 지역사회 · 임아연
…옥현리 경로당에서 문을 열면 눈앞에 엄마의 가슴처럼 부드럽게 굴곡진 산봉우리 세 개가 마을을 안락하게 안고 있다. 삼승산이다. 첫째 봉우리를 승당산이라 부르고, 두 번째 봉우리를 승왕산이라 한다. 그리고 세 번째 산이 승황산이다. 나즈막한 산이지만 마…
2012.08.17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일본과 우리와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 문화적인 관계로 인하여 떨어질 내야 떨어질 수 없는 밀접한 관계로 살아왔다. 일본은 명치유신(明治維新)을 단행한 이래로, 서양문물과 과학기술을 받아 드려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국가를 건설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2012.07.27 · 지역사회 · 우현선
…. 지금은 버스가 다니니까 당진으로 많이 가는 편이지.” “왜 아니여. 학교도 1반이랑 7반은 면천으로 다녔지. 그때는 차돌백이가 길이 가장 고약했어. 다들 걸어서 학교를 다녔지. 학교가 없던 시절에는 우리 동네 애들은 양유리에 있는 강습소에 다녔고.…
2012.06.13 · 지역사회 · 우현선
…등도 개발하고 있다. 고성 김씨 집성촌, 고대초 학군 슬항1리는 고대초등학교 학군으로 요즘에는 마을에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5명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젊은 주민들이 많지 않다. 일제강점기 전후로는 슬항리에 강습소가 없어 대촌리, 진관리에 위치한 강…
2012.05.23 · 지역사회 · 우현선
…려움을 현명하게 이겨내고 더 행복하고 건강한 가정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 이웃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기회를 마련했다. 엄마의 공부, 아이들에게도 영향 조용한 성격에 집안일만 하며 살았던 정은모(48) 주부는 5년…
2012.04.06 · 지역사회 · 김창연
…받아 운영 중에 있지만 수용인원에 한계가 있어 일반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 등을 다니지 못하는 중증장애 어린이들은 집에서 방치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유선우 감사는 “장애인들을 바라보는 시선이 아직까지도 좋지 못한 실정”이라며 “중증장애 어린이와 …
2012.03.28 · 지역사회 · 박기욱
…난호 1면에 소개된 호서고 김건태 학생 기사를 재밌게 봤다는 강 씨는 “학교폭력과 진학, 등록금, 취업 등 학생들이 관심 있어 하는 소재를 기사화 했으면 한다”며 “독자 확보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한 “우리 주변에 성실하고 행복하게 살…
2012.03.21 · 지역사회 · 우현선
…까지 쓸려왔다는 이야기로 볼 때는 마을이 다 바다였다는 소리지. 하기사 우리 어릴적에도 안마당에서 게며 말똥쟁이 같은 게 나오곤 했으니까.” “마을 앞까지 바닷물이 들어왔었지, 왜~. 조금씩 갯벌이 간척사업으로 막히고 막혀서 지금의 지형이 된 겨.” …
2012.02.28 · 지역사회 · 우현선
…고가 있었다하여 당진북창이라고 불린 것이다. “지금은 흔적도 없어졌지. 우리네 어릴 때도 없었어. 할아버지한테 들은 이야기인데 채운교 아래 부근에 커다란 곡식 창고가 있었다더구만. 서울로 올라가는 쌀을 보관해 두던 창고였댜.” 북창이 있던 자리는 현재…
2012.02.05 · 지역사회 · 우현선
…을 가다’를 시작하게 했다. 새우젓 실은 황포돛대 오가던 구양도 서야고등학교를 지나 예산으로 향하는 32번 국도는 쭉 뻗은 대로와 길게 늘어선 가로수, 양 옆으로 펼쳐진 들녘으로 사계절 어느 때나 아름다운 농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이 도로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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